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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호] 박찬봉 연구교수 - 통일 환경 변화와 경영학의 과제

제122호

박 찬 봉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연구교수)

통일 환경 변화와 경영학의 과제

지금까지 우리 경영학계는 통일 및 남북관계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아왔다. 그러나 금년 초부터 남북관계를 둘러싼 국내외의 환경에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고 이제 통일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통일에 있어 가장 어려운 문제의 하나는 남북 간의 막대한 소득 격차를 해결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우리 기업들의 역할이 중요하고, 그만큼 경영학계에 대한 기대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본고는 먼저 최근의 통일 환경 변화를 평가하고 앞으로 우리나라 경영학계가 통일과 관련하여 수행해야 할 과제는 어떤 것일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작금의 통일 환경 변화는 국제체제(system), 국가 체제(state) 및 개인(individual) 이라는 ‘분석의 수준’(level of analysis)을 활용하여 평가해볼 수 있다. 먼저, 국제체제 차원에서 북한의 핵 및 인권 문제가 어떻게 전개되는지가 주목된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북한의 핵 및 인권 문제를 ‘북한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트럼프대통령의 Make America Great Again 정책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이 투키디데스 트랩의 양상을 보이면서, 이 시스템 차원의 변화가 북한의 핵 및 인권 문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은 금년 6월 12일 트럼프-김정은 회담이 준비되는 과정에 이를 견제하기 위해 5월 7일 갑작스럽게 개최된 시진핑-김정은 회담이었다. 시스템 차원의 헤게모니 경쟁국인 미국과 중국의 최고 정책결정자들이 북한 문제의 전면에 나선 것이다. 이런 구도에서는 미국이 북한의 생명선(life line) 역할을 해 온 중국을 압박하는 카드로 ‘공정무역(fair trade)' 외에 북한의 핵 및 인권 문제를 들고 나올 가능성을 예상 해 볼 수 있다.

둘째로, 국가 체제 수준에서는 아무래도 북한의 체제 안정 문제가 여전히 관건일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1990년대 전후에 불어 닥친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개혁 개방 물결을 핵문제를 방패 삼아 막아왔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북한의 핵문제가 북한 내부적으로 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핫이슈로 부상한 상황에서 어느 방향으로 귀결이 되던 북한의 체제 안정도에 만만치 않은 영향을 줄 것은 명약관화 하다. 북한의 소극적 태도로 진전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국제사회의 대북 압력이 가중될 것이 뻔하고, 반대로 북한의 협조로 핵 폐기가 이루어진다면 곧이어 등장할 개혁 개방의 압력이 안팎으로부터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내에 시장화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정착되었고 한국의 대중문화 확산이 북한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한껏 키워 놓은 지금 이러한 상황 전개는 북한 변화의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끝으로, 개인 수준에서는 누구보다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리더십 스타일이 시험대에 올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국익우선주의에 입각하여 기존의 합의나 관행에 구애 받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수단의 선택에도 주저함이 없는 독특한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다. 이미 북한 문제에 칼을 빼든 그가 2년 뒤 재선을 앞두고 얼마 남지 않은 기간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의 힘을 최대한 활용한 다양한 카드를 구사할 것이 분명하다. 김정은 위원장의 적극적 행보도 예사롭지가 않다. 그는 문재인대통령과의 회담뿐 아니라 트럼프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한결같이 북한의 ‘새로운 변화’를 강조했다. 이 메시지는 국제사회뿐 아니라 북한주민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북한 노동당의 공식대표단도 중국을 방문하면서 지금까지 북한의 금기어이던 ‘개혁 개방’ 의지를 표명하기도 하였다.

이를 종합해보면, 북한에 다가오는 변화가 예전에 보지 못한 폭과 속도로 전개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정도의 폭과 속도라면 남북관계와 나아가 통일의 관점에서도 의미심장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경영학은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의 변화와 통일의 전개 과정을 단계별로 나누어 보고 그 단계별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 발전의 단계를 구분하는 준거는 대체로 다음 네 가지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첫째는 노태우 정부 이후 지금의 문재인 정부까지 우리 역대 정부가 공식 통일방안으로 유지해 온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3단계 즉, 화해 협력, 남북연합, 통일 완성의 단계이다. 또 하나는 구 공산권 국가들의 개혁 개방 및 체제 전환 사례들이다. 여기에는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이 점진적으로 변화를 수용한 개혁 개방 모델과 구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경험한 Big Bang 식 체제 전환 모델이 포함된다. 그리고 셋째로는 남북통합의 측면에서 유럽 통합과 같은 체제통합 사례도 참고가 될 것이다. 끝으로, 우리의 바람직한 목표는 통일 그 자체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통일 이후 통일한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를 하나의 단계로 설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제 이를 종합하여 단계를 설정해 보자면, ①남북 교류 협력, ②북한 개혁 개방(체제 전환 포함), ③남북 통합, ④통일 한국 발전으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각 단계에 있어서 관련 논의 동향과 경영학적 연구 과제를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남북 교류 협력 단계는 북한이 본격적인 개혁 개방을 하지 않은 상태를 상정하므로 개혁 개방 이전의 구 공산권 국가들과의 경제 경영 관련 연구와 논의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남북관계에서는 남북 교류 협력이 그 단계에서 정지되는 것이 아니라 장차 북한의 개혁 개방과 남북 통합 등으로 진전될 것임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선발 진출(first mover)에 따르는 기회와 위험을 감안한 시기 선택 문제(when), 북한의 경제 특구(중앙 5개, 지방 22개) 및 현 정부의 신경제지도 등을 감안한 장소 선정 문제(where), 남북 교역 외에 북한의 대외 경협 방식인 합영, 합작, 외국인 기업 등의 사업 방법(how) 등에 관한 연구가 기대된다. 다만, 북핵문제 해결 이전에는 안보와 경협 간의 긴장 관계가 여전히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상계거래(counter trade)는 구 공산권 국가들의 경화 부족을 해결하는데 유용했지만 서방국의 입장에서는 안보에 위협이 되는 물자가 우회적인 현물 거래로 공산권 국가에 유입되는 것을 경계하였던 사례가 있다.

북한의 개혁 개방과 관련하여서는 이미 구 공산권 국가들의 경험을 토대로 국제사회에서 있어왔던 많은 논의들이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세계은행(World Bank)과 동유럽 국가들의 체제 전환을 위해 설립 운영되고 있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등 국제금융기구(IFI) 들은 점진적인 방식보다는 Big Bang 식 접근이 정책의 모멘텀을 유지하고 각 부문별 정합성을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선호된다고 주장하고 있다(Washington Consensus). 그리고 개혁 개방은 완급의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자유화(liberalization), 사유화(privatization),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 그리고 사회 정책(social policy)을 동반하며, 이러한 정책의 선택에는 그 나라의 초기 조건(initial condition)이 중요한 변수가 된다고 본다. 개혁 개방 단계부터는 북한 기업의 ‘경영’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다. 특히 북한 기업의 인수와 전환, 창업, 기업 경영구조(corporate governance) 등이 중요한 연구 과제가 될 것이다.

남북 통합은 남북의 경제, 안보, 정치 및 사회 문화의 제 분야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다. 유럽 통합은 경제 통합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독일 통일에 있어서도 경제 통합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좋은 참고가 된다. 경제통합의 과정에 대해서는 Bela Balassa가 The Theory of Economic Integration(1961년) 에서 제시한 7단계설이 우리나라는 물론 국제 학계에서도 아직 통용되고 있다. 즉, ① Preferential trading area, ② Free trade area, ③ Customs union, ④ Common market, ⑤ Economic union, ⑥ Economic and monetary union, ⑦ Complete economic integration 이다. 기업 경영의 관점에서는 이 과정에서 국제경영이 국내경영으로 바뀌는 만큼 이에 따라 경영 전반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게 된다.

끝으로 통일한국의 성장 문제는 통일과정의 백미에 해당된다. 통일 과정은 결국 통일 이후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기초를 놓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동안 경제학계에서는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는 경제개발(economic development), 선진국의 경우에는 경제성장(economic growth)으로 구분하여 접근하였는데, 남북관계는 이 두 측면을 함께 갖는 상황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특히 경제성장을 기업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개방경제 체제 하에서 기업의 경쟁 우위(competitive advantage)를 어떻게 확보하고 키워 가느냐 하는 것이 된다(Michael Porter). Porter 교수에 의하면, 개발도상국은 보유 자원 위주의 가격경쟁 전략을, 그리고 선진국은 기술력에 바탕을 둔 제품의 질적 차별화 전략을 주로 구사하는 경향이 있다. 이 점은 오히려 통일한국의 기업들에게 더없이 유리한 경쟁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다. 경영학이 통일한국의 기업들에게 한국의 기술 경쟁력과 북한의 가격 경쟁력을 함께 갖출 수 있도록 돕는다면 우리 기업들이 통일 과정의 어려움을 국제 경쟁력 강화로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이상의 단계들은 반드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만은 아니다. 각 요소들이 서로 결합되어 압축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통일 과정은 그만큼 복잡하고 힘겨운 것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는 그 과정을 외면할 수 없으므로 그만큼 우리가 준비를 잘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통일 준비는 우리나라 모든 기업이 참여해야 하고 각 기업의 모든 직원들이 동참해야 하는 과제이다.

통일은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른다. 이러한 불확실성 하에서는 최악을 대비하는 것이 순리다. 경영학은 효과성(effectiveness)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경제학에서는 생산성(productivity)이라는 표현을 주로 쓴다. 독일 통일에서 가장 어려웠던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다. 동독 주민들의 소득에 비해 현저히 낮은 생산성은 외부 투자 유치에 발목을 잡았다. 이를 메우기 위한 서독의 이전지출은 재정에도 엄청난 부담을 주었다. 동서독 간의 소득 수준은 2:1 밖에 안 되고 인구 비율은 4:1 인데도 그랬다. 남북한의 1인당 소득 격차는 20:1 내지 40:1 수준으로 평가되고 인구 비율은 2:1 밖에 안 된다. 생산성 제고의 중요성이 그만큼 크다. 다가오는 통일에 우리 기업들을 잘 준비시켜야 할 책임이 우리 경영학계에 지워져 있다. 통일 과정에서 우리 기업들이 남과 북의 우위를 최대한 살려서 국민들의 생산성을 높이고 기업의 효과성을 제고하여 국제 경쟁력을 갖고 뻗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우리 경영학계가 발 벗고 나서야 할 때다.

Issue Brief는 집필자의 견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이슈브리프1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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