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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호] 차정미 연구교수 - 지리적 상상의 충돌과 패권경쟁, 그리고 한반도 대전략

제131호

차 정 미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연구교수)

지리적 상상의 충돌과 패권경쟁, 그리고 한반도 대전략

패권국의 지전략 경쟁 : “미··일, 서로 다른 ‘동아시아’를 꿈꾸는가”

카첸스타인(Katzenstein 2000)은 ‘지역주의(regionalism)’란 단순히 지리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정부와 사회의 전략을 반영하는 정치적 구조이고, ‘지역(region)'은 정치를 통해 만들어진 사회적 구조물이라고 강조한다. 지역이 지리적 개념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전략적 구상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은 전략적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재구성될 수 있고 지역주의는 고정된 지리적 조건이 아니라 전략적 조건에 의해 다른 모습으로 전개될 수 있다. 카첸스타인의 언급처럼 1990년대 급격히 부상한 ‘동아시아’ 담론, 그리고 APEC, EAS, ASEAN+3 등 다양한 역내 다자기구의 출현은 역내 국가들의 전략과 선택에 의해 촉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탈냉전 이후 경제가 국제질서의 중요한 축으로 부상하고 세계적인 지역경제 블록화의 추세, 그리고 1997 금융위기 등의 요인으로 동아시아는 공동체 인식이 급격히 제고되고 협력의 제도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에 따라 역내 패권국들의 전략적 구상이 변하면서 최근 동아시아는 지역의 지리적 개념과 공동체의 개념이 재구성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미·중간, 중·일간 패권경쟁, 권력경쟁은 ‘일대일로(一帶一路)’와 ‘인도-태평양전략(Indo-Pacific Strategy)’ 이라는 서로 다른 전략 지도를 그리는 것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러한 지전략의 변화와 지리적 패권경쟁의 구도 속에서 동아시아는 지역화의 동력, 지역공동체 구상의 구심력을 잃어가고 있다. 중국과 미·일이 각자의 전략적 지역 범위를 새롭게 디자인하면서 동아시아는 한편으로는 균열을, 또 한편으로는 중첩된 경쟁을 경험하고 있다.

중국의 지리적 확장과 일본의 해양패권적 대응 : 일대일로 vs. 인도-태평양전략

카플란(Kaplan 2017, 291-296)은 중국이 가장 본질적인 수준에서 제기하는 도전은 지리적인 것으로 오늘날 중국의 경제와 외교전략은 과거 8세기의 당나라와 18세기 때 청나라의 영토 범위를 넘어서는 지역적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는 지역이 새롭게 늘어난다는 것이다. 2000년대를 전후하 여 동아시아의 지역 패권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급속한 힘의 부상을 반영하듯 유럽과 아프리카로 확대된 새로운 중화권(Chinese region)의 지도를 그리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과거의 실크로드 경제권의 부활뿐만 아니라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과 인도 태평양 지역의 중국 주도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한편 일본은 아베 정부 출범 이후 ‘인도-태평양 구상’을 본격화하면서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는 새로운 ‘지역’ 구상을 보여주고 있다. 1960년대 아시아태평양지역협력체 구상을 제기하면서 APEC 등 역내 다자체제의 부상에 주요한 역할을 해온 일본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역내 질서 변화에 대해 지전략의 변화로 대응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웰러스(Wallace 2018)는 1880년대 중국, 한국과 연계된 아시아의 틀을 벗어나 서구와 상대해야 한다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입구(脫亞入歐)’론이 130여 년이 지난 지금 일본에서 유사한 대외전략 논의로 재부상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일본의 지전략적 중점이 아시아에서 태평양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해양지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러한 인도태평양구상은 미국 트럼프 정부에서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는 주요한 지전략으로 추진되고 있다. 지난 8월 미 국방부가 발표한 ‘Indo-Pacific Strategy Report’는 중국의 도전국으로 명시하면서 중국의 인도·태평양 지역의 패권 추구를 억제하는 것이 새로운 지전략의 배경임을 보여주고 있다.

갈라지는 동아시아, 그리고 한국의 대전략: “한반도, 어떤 동아시아를 꿈꾸는가?”

동아시아 지역에서 첨예화되고 있는 패권국 간의 경쟁과 갈등은 이들이 서로 다른 ‘지전략 지도’를 그리면서 동아시아 공동체의 원심력이 커지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세계지도는 중국의 일대일로와 미·일의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갈라져 있고, 그 속에서 동아시아 지역주의는 약화하여 가고 있다. 패권국의 경쟁적 연결(connectivity) 경쟁의 핵심공간으로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이 부상하는 한편, 동북아는 연결되지 않는 신냉전(new Cold-war)의 공간으로 남겨지는 듯하다.

한반도는 중국의 일대일로 지도에도, 그리고 미·일의 인도-태평양 전략 지도에도 아직은 연결되어 있지 않다. 패권국 간 대륙 연결 경쟁 속에서 한국의 미래 지도는 여전히 열린 공간으로 남아 있다. 신냉전의 고립공간이 될 것인지, 아니면 상호 배타적인 패권국 지도를 연결하는 평화의 공간과 협력의 공간으로 부상할 것인지 한국의 고민과 토론이 필요한 시기이다. 한국은 변화하는 새로운 지리 경쟁을 냉철히 조망하고 분석하면서 한국이 그리는 미래의 동아시아 지도, 지전략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행해 갈 것인지에 대한 대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상호 배타적 지리 경쟁이 부상하는 오늘의 동아시아 질서 속에서 한국이 두 개의 지도를 한반도로 확장하고 상호 연결하는 구심력을 발휘하고, 새롭게 동아시아의 중심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해 본다. 이러한 한국의 미래 전략지도는 향후 북한의 개혁개방과 비핵화 가능성에도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북미협상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과정에서 남북한은 그리고 한반도는 어떻게 새롭게 한반도의 동아시아 지도를 그릴 것인지, 한국은 어떠한 동아시아를 꿈꾸는지 깊은 고민과 토론이 필요한 때이다.

● Issue Brief는 집필자의 견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이슈브리프 1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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