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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호] 전수미 전문연구원 - 북향민을 통해 본 대북정책

제138호

전 수 미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변호사)

북향민을 통해 본 대북정책

약 10여년이 넘게 북한에서 탈출하여 온 북향민들을 만나고 지원하면서 느꼈던 게 있다. 같은 조선어를 쓰지만 우리의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과 너무나도 많이 다르다는 것. 하지만 팍팍한 남한 생활에서 누구보다도 순박하고 자존심과 강단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는 북향민들을 만날 때면, 우리는 모두 법적으로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한 번 더 고민하고 같이 울면서 아픔을 공유하는 한민족이라는 것을 느끼곤 한다.

이번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된 논란은 1950년 남북이 갈라지고 동족상잔의 상처를 입은 채로 상호비방과 선전선동을 하던 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남북은 이 오랜 갈등과 논란을 치유하기 위해 2000년 6.15. 공동선언을 통해 ‘상호 비방을 중단하자’라는 내용에 합의하였고, 정부 차원의 대북전단은 사라졌다. 나아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에서도 ‘상호 적대행위의 금지’를 합의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민간 차원에서는 2000년대부터 대북전단 제작과 살포를 계속하여 왔고, 북한은 이번에 매우 이례적으로 대북전단 살포를 강도 높게 비난하며 직접적인 조치를 취하였다.

대북전단 대응과 같이, 대북정책의 방향은 북한의 지위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북한은 국제법상 인정되는 지위로 인해 두 가지 지위를 가진다 할 수 있는데, 먼저 국제법상 독립된 주권국가로서 활동하는 규범영역, 즉 남한과 외국 및 북한과 외국 등 각 남북한과 외국간의 활동영역에서는 각 주권국가로서 활동하게 된다. 또한 민족 일부분으로서 활동하는 규범의 영역, 즉 남북 간 거래를 민족 내부의 거래로 보는 등 남북교류와 같은 공동문제에 관한 대외적 관계에서는 국가 사이가 아닌 한민족으로서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가 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였을 때, 우리는 화해와 협력의 동반자이자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라는 점에 입각하여 대북정책을 수립하고 진행할 수 있다. 그러한 동반자로서 최근 북한의 대북전단을 이유로 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폐쇄 및 앞으로 북한이 보여줄 행보를 어떻게 예측할 수 있을까. 이는 북향민에 대한 이해를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 인신매매로 인해 중국 남성에게 팔려나가는 궁박한 상황에서 지장을 찍은 브로커 계약서의 돈을 갚기 위해 남한에 와서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북향민, 남한 사람들의 의례적인 밥 먹자는 이야기에 늘 핸드폰을 보며 ‘언제 밥먹자고 연락이 올까’하며 그 연락을 내내 기다리는 북향민은 바로 북한 사람들의 생각과 특성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결국 북한 사람들에게 약속은 매우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 나고 자란 곳에서 거의 평생을 지내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는 것은 북한 공동체 안에서 생존과 직결된다. 이러한 북한 사람들의 행태를 볼 때 남북관계의 해결을 위해 중요한 것은 같이 무언가를 하기 위한 ‘신뢰’이고, 그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약속의 이행’이 전제되어야 한다.

북한은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9월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함께 하며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에 대한 남한의 역할을 기대해왔고, 평양 능라도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15만 관중 앞에서 연설하는 기회를 부여함으로서 지금까지 전례 없었던 대우를 했다. 하지만 남한은 대북제재를 이유로 북한과 약속한 사항들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고, 이는 북한의 지도자에게 상당한 실망감을 안겨준 것으로 보인다. 북한 입장에서는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는 남한은 더 이상 신뢰를 형성하기도, 같이 무언가를 추진하기도 마땅치 않다. 6월 13일, 남북관계는 이미 수습할 수 없는 지경이 이르렀다면서 “자기가 한 말과 약속을 리행할 의지가 없고 그것을 결행할 힘이 없으며 무맥무능하였기 때문에 북남관계가 이 모양, 이 꼴이 된것이다.” 라면서 남한 정부를 강력하게 비난하는 북한 장금철 통일전선부장의 담화는 이를 잘 보여준다.

북한은 이러한 연유로 남한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거두고 미국과 직접적인 대화를 추진하기 위한 행동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미 김여정이 언급했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의 폐쇄’가 진행되고 있다. 다음으로 북한은 9. 19. 남북군사합의를 파기하고 개성공업지구의 완전한 철거까지 진행하면서 말한 그대로의 조치를 순서대로 이행해 갈 것이다. 9.19. 남북군사합의를 파기하는 행위들과 더불어 군사 분계선 일대에서의 무력시위를 통해 한반도의 안보 긴장감을 높여야 대선을 앞두고 있는 미국이 협상 테이블에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북한과 약속한 내용을 이행하는 방법밖에 없다. 북한 사람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뭔가를 같이 할 수 있는 상대방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우리는 북한의 김여정 부부장이 격노하면서 남한에 경고를 한 이유가 단순히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어 삐라 날리는 것을 중단하라는 의미가 아님을 알아채고 이제라도 2018년 북한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를 ‘실행’해야 한다. 북향민을 이해하면 북한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다.

● Issue Brief는 집필자의 견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이슈브리프 1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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