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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칼럼] 송경호 전문연구원 - 대표란 무엇인가

대표가 위기다. 거대 양당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상대 당대표를 공격한다. 강제징용 해법과 관련해 ‘대통령 자격 없다’고 적은 손팻말도 등장했다. 정부 입장을 옹호한 부산시장 역시 시장 자격이 없다고 한다. 우리 정치현실에서 소위 ‘국민을 대표한다’는 정치인 대다수가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실정이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예로부터 정치는 대표적 안줏거리였다. 기승전결도 뻔하다. 정치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다가(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전운이 감돌고(승), 의견 차이로 술자리가 파투날까 싶다가도(전) “애초에 정치인들은 우리를 대표하지 않고, 그럴 생각도 없다”라는 회의론으로 갈등이 봉합되는 것이다(결).


이런 회의론은 갈등의 가능성을 줄이지만 무관심은 증폭시킨다. 골치만 아프고 답도 없는 문제에 괜히 얼굴 붉힐 필요 없으니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는 것이다. 시쳇말로 정치가 술자리 3대 금기 중 하나가 된 것도 이런 이유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보면, 술자리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입장과 의견이 달라도 함께 정치현실을 비판하고, 정치와 정치인의 역할을 이야기하고, 누가, 무엇을, 어떻게 대표해야 하는지를 토론하는 과정에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문제를 안줏거리로 삼아야 한다. 비에이라와 런시먼이 2008년에 쓰고 노시내가 2020년에 우리말로 번역한 <대표: 역사, 논리, 정치>는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저자들은 투표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는 ‘대표제’ 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에 비해 열등한 간접민주주의로 간주하면서 인민의 직접 통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우리가 대표를 이해해 온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근대세계의 정치가 대표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분석이 깔려 있다. 대표가 존재한다는 것은 반대로 피대표자가 ‘부재’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대표자의 대리 행위를 통해 피대표자가 ‘현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대표(representation)는 곧 ‘재현’(re-present)의 문제이며, 정치의 핵심은 누가, 어떻게, 무엇을 ‘재현’할 것인가에 있다는 것이다.


김태진 교수(동국대학교 일본학과)가 2021년 5월 출판한 논문 ‘대의제를 둘러싼 번역과 정치: representation의 번역어로서 대의/대표/상징’은 근대 일본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이해되었는지를 면밀하게 살펴본다.


그는 대표가 “인민의 뜻이건, 하늘의 뜻이건, 이성의 뜻이건, 왕의 뜻이건 그 무언가 보이지 않는 것을” ‘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하면서, 대표 개념에 내재한 다양성/다층성으로 인해, 당시 일본에서 소위 민권파, 천황파, 국권파가 이 개념을 ‘대의/대표/상징’ 등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읽어낼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분석에 따르면, 기존의 관점에서 대립적인 것으로 이해되던 이들의 입장은 한 가지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요컨대 구체적으로 누가, 어떻게, 무엇을 ‘레프리젠트’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각기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달랐지만, ‘어떻게 좋은 정부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했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우리 정치에서 ‘국민의 대표’를 자임하는 정치인들은 서로의 대표성을 공격하는 데만 열중하고, 이를 양분으로 정치에 대한 회의론과 무관심이 확대되고 있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정작 누가, 어떻게, 무엇을 대표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좋은 정부를 만들 것인가’에 관심이 없다면, 대표들은 사실 대표할 마음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대표의 위기는 다름 아닌 그들이 자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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