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한국에서 공부하는 미국·일본·중국 대학원생들과 부산에 다녀왔다. 1박2일 동안 을숙도 생태공원, 북항, 영화의 전당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버스로 왕복 12시간이 걸렸지만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다른 학교, 학과에 소속돼 만날 일 없던 대학원생들은 금세 절친이 되어 일정 내내 붙어 다녔다.
3개국 대학원생이 참여한 이 프로그램의 공식 언어는 한국어였다. 방문지에 대한 설명이나 특강 역시 한국어가 기본이었다. 자국 출신이 아닌 사람과 대화할 때도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사용했다. 대학원생들은 공식적인 행사 일정이 끝난 뒤 늦은 시간까지 한국어를 중심으로 영어·일본어·중국어에 손짓발짓까지 섞어가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 과정에서 한국에 대한 애정과 학문에 대한 열의, 낯선 타국에서 공부하는 어려움을 들을 수 있었다.
사회적 차원의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한국인 해외유학생보다 한국에 온 외국인 유학생이 더 많은 시대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해외유학생은 2017년 23만9824명에서 2022년 12만4320명으로 절반 가까이 감소한 데 반해, 2022학년도 4월 기준 국내 대학의 유학생 수는 16만6892명에 이르렀다. 학령인구 감소와 함께, 머지않아 유학생 20만명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우리는 이들이 친한파가 되기를 기대하지만, 낙관할 수는 없다. 송문석(경성대), 황기식(동아대) 교수는 2020년 ‘한국체류 외국인 유학생의 공공외교 강화전략 연구’에서 유학생들이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시간이 갈수록 점차 낮아져 반한 정서가 높은 상태에서 귀국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유학생의 양적 유치에만 관심을 두고, 대학은 유학생을 재정수지 개선 수단으로만 인식하면서 반한파와 혐한파를 양성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 연구에서 소개한 ‘U-curve 이론’은 한 가지 시사점을 준다. 이에 따르면 유학생들은 허니문 단계, 문화충격 단계, 회복 단계, 적응 단계라는 4단계의 문화적응 과정을 거친다. 연구마다 차이가 있지만, 유학 이후 짧게는 4~6개월, 길게는 2~3년 동안 문화충격 단계를 경험하고 그 이후에는 회복과 적응의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체류 초기에는 환상을 갖고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바라보다가 2~4년 기간에 반한 감정이 최고조에 다다랐던 것이다. 제도와 시스템의 부족에서 오는 불만과 불편뿐만 아니라, 대인커뮤니케이션의 부재 혹은 결핍 역시 반한 감정으로 연결되는 요인으로 나타났다. 이런 분석에 따라 연구자들은 허니문 단계부터 공공외교적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단기과정이 많은 학부와 달리 대학원생들은 더 오랫동안 한국에 머물며 문화적응을 완료한 한국 전문가로 성장할 공산이 크다. 2022년 기준 일반대학원의 외국인 학생은 3만1127명으로, 전체 재적학생 수의 18.6%에 해당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내가 참여한 ‘외교부 신진 한반도 전문가 프로그램’ 역시 이런 고민이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1박2일의 일정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짧은 유학 시절이 떠올렸다. 대학원생 시절은 원래 가난하고, 아프고, 외롭기 마련인데, 낯선 타국에서는 더 심했다. 힘들었던 그 시절을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것은 그때 만난 사람들 덕분이다. 행정직원들은 외국인인 나를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고, 지도교수는 존칭을 사용하며 나를 한 명의 연구자로 대해줬다. 무엇보다 힘들게 번 알바비로 맛있는 밥을 사주며 함께 기뻐하고 슬퍼해준 동료 대학원생들이 있었다.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한다. 한국에 유학 와서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세계의 청년들에게 우리가 진정한 친구로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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