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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칼럼] 송경호 전문연구원 - 임금 노릇 하기도 어렵고 신하 노릇 하기도 쉽지 않다


잠자리에 누웠던 첫째가 대성통곡했다. 쪽지 시험을 쳤는데 아무래도 0점 같단다. 예전에 20점 받고 혼난 일도 끄집어냈다. 그 점수를 받고도 공부할 생각이 없어 보여서 한 소리였다. 선생님은 ‘킬러 문항’ 없이 초등학교 4학년에 맞는 문제를 냈을 터다. 좋은 경험했으니, 방학 동안 아빠랑 복습하자. 이렇게 한참을 달래 겨우 재웠다.


선생 노릇도 어렵고 학생 노릇도 쉽지 않다. 생각해보면, 사회적 역할 중에 쉬운 건 하나도 없다. 통치자는 그중 가장 심할 것이다. “사람들의 말에 ‘임금 노릇 하기도 어렵고 신하 노릇 하기도 쉽지 않다(爲君難爲臣不易)’고 합니다. 만일 임금 노릇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안다면, 이 한마디 말이 나라를 흥하게 하는 것을 기약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한마디로 나라를 흥하게 할 수 있는 말이 있냐는 질문에 대한 공자의 대답이다(논어 자로편).


핵심은 그 역할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 있다. 통치자라는 역할의 무게를 깨닫고 겸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송재혁 교수(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는 이 말에서 착안해 최근 세종 평전인 <세종의 고백: 임금 노릇 제대로 하기 힘들었습니다>를 출판했다. 저자에 따르면, 세종은 권력과 이념의 대립, 정치적 현실과 도덕적 이상의 대립, 공과 사의 갈등 속에서도 조선을 “정변의 시대에서 통치의 시대로 전환”시킴으로써 비정상의 정치를 ‘정상화’한 인물이었다.


위대한 세종대왕을 떠올리면 당연한 이야기지 싶지만, 그가 세자로서의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던 젊은 이도(李裪)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이 책은 우리가 기억하는 완성된 통치자로서 세종뿐만 아니라, 태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갑작스럽게 왕자에서 세자로, 또 세자책봉 2개월 만에 아버지를 상왕으로 둔 허수아비 국왕이 되었던 미완성의 세종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저자에 따르면, 세종은 성공으로 점철된 삶을 살지 않았으며, “오히려 무수한 실패를 겪으며 성장해간 인물”이다. 이 성장의 중심엔 부지런함이 있었다. 우리는 세종을 천재로 기억하지만, 세종의 일생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行狀)은 그의 정치적 삶을 평가하며 “한 번도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노력의 핵심은 배우는 것 혹은 배우려는 자세에 있다. 세종의 형이자 세자였던 이제(李褆)에게 그의 스승 권근(權近)은 이렇게 당부했다. “보통 사람은 비록 한 가지 재주만 있어도 입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임금의 지위에 있으면 배우지 않고는 정치를 할 수 없고,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나라가 곧 망하게 됩니다.” 이제는 이 말을 따르지 않았고, 태종은 “만약 뒷날에 생사여탈의 권력을 마음대로 사용한다면 예측하기 힘든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하며 이제를 폐위했다.


반면, 국왕이 된 젊은 이도는 부지런히 배웠다. 경영관 탁신(卓愼)은 칭찬하며 이렇게 당부했다. “전하께선 이 마음을 지키셔서 게을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정사를 처결하고 학문에 힘쓰는 일 외에 다른 생각이 움트지 않게 하시면, 총명함이 날로 깊어질 겁 니다.” 세종의 행장은 그가 평생 이 말을 지켜 “증빙과 원용을 살피고 조사해, 처음부터 끝까지 힘써 정신을 가다듬어 정치를 도모했다”고 말한다.


통치자의 역할은 누구에게나 무겁고 어렵다. 당연히 실패를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겸허한 마음으로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함으로써 미완성의 이도는 위대한 세종대왕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서두에서 인용한 논어 자로편에는 뒷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의 말에 ‘임금 노릇 하기가 즐거운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말을 하면 아무도 어기지 못하는 것이 즐겁다’고 합니다. 이것이 한마디로 나라를 잃는다는 말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한마디로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는 말이 있냐는 질문에 대한 공자의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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