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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칼럼] 봉영식 전문연구원 - 일본은 있다? (한반도포커스)

최종 수정일: 2020년 10월 8일

[한반도포커스-봉영식] 일본은 있다?



전여옥 전 국회의원의 저서 ‘일본은 없다’는 독설적인 비평과 도발적인 제목, 그리고 대법원 표절 판결로 오랫동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달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되는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은 없다’는 말이 다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9일 도쿄 게이오대 심포지엄에서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가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의 기조연설을 놓고 “문 특보가 일본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며 문제제기를 한 것이 논란의 시작이다. 이에 대해 문 특보는 “현재 남북한과 미국이 정전협정, 비핵화를 논의하는데 정전협정 당사국이 아닌 일본의 역할이 없을 수밖에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과연 일본은 한반도에서 지속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평화체제 건설과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한반도 비핵화의 달성에 아무런 역할이 없는가? 일본은 있다. 먼저 일본은 일본인 납치 문제를 줄기차게 제기하면서 북·미 협상과 남북 협력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 과거 6자회담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 다자 협력이 한창이었을 때는 6자회담의 공식 목표인 북한 비핵화보다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에 더 집착해 보이는 일본은 주로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제 미국, 유럽과 국제사회는 납치 문제에 대한 일본 아베 정부의 입장을 상당히 지지하고 있다.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사망은 미국인들과 정치 지도자들에게 북한 정권의 인권유린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남북 경협과 군사적 긴장 완화를 추진하는 한국 정부는 북한 인권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프랑스 르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과의 교류·협력 강화가 북한 주민의 실질적 인권 개선에 실효성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지속적으로 높은 경제 성장을 기록한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하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투쟁한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으로서는 소극적인 답변이었다. 아베 정부는 이 틈을 파고들어 북한 인권 관련 당사국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라고 국제 여론몰이를 하면서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대북 협상의 중심 어젠다로 고집할 가능성이 있다. 둘째, 일본은 정전협정 당사국이 아니라는 핸디캡을 국교 정상화와 청구권협정으로 극복할 수 있다. 미국이 대규모 경제 지원을 거부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간호사와 광부를 파견해 서독으로부터 차관을, 국교 정상화를 통해 일본으로부터 식민지배 피해보상 대가로 8억 달러(무상 3억 달러, 장기 저리 정부차관 2억 달러, 상업차관 3억 달러)를 제공받았고, 그 돈으로 포항제철, 경부고속도로 등 산업화 기간산업과 인프라를 구축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진정으로 경제 번영을 택했다면 대규모 재원 마련은 필수다. 북한은 이미 2002년 9월 북·일 정상회담에서 ‘경제 협력’의 틀 안에서 과거를 청산하기로 조·일 평양선언 2항에 합의했다. 2005년 1월 한·일협정 관련 외교문서가 공개되자 북한은 “남조선 당국이 피해자 103만2000여명에 대해 1인당 생존자는 200달러, 사망자는 1650달러라는 너무도 보잘것없는 금액을 요구했다”며 일갈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의 상응조치로 국제사회가 대규모 경제 지원을 제공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경제 번영이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힘을 모아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문 특보 또한 “북한의 협력을 얻기 위해선 보상은 필수”라고 말하고, “평양 주재 연락사무소 설치나 법적 구속력이 약한 종전선언만으로는 북한이 만족하지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결국 문재인정부가 구상하는 비핵화와 북·일 국교 정상화 및 배상은 시간이 좀 흐르면 만나게 되어 있다. 일본은 있다, 없다에 집착할 필요 없다. 정말 필요한 건 일본이 있는 것은 있는 대로, 없는 것은 없는 대로 한국이 바라는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는 데 이용하는 지혜와 융통성이다. 봉영식 연세대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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