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변화와 한반도의 미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왼쪽)과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이 지난 1일 경향신문 창간 72주년 특별대담에 앞서 멀리 인왕산이 바라보이는 경향신문 옥상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정세현“평양공동선언은 실질적 종전선언, 한반도 평화의 시작”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73)과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 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67)는 1년 전 경향신문 창간 71주년을 맞아 한반도 상황에 대해 대담을 했다. 두 사람은 남북관계 전망이 보이지 않고 ‘강 대 강’ 대치상태로 흘러가는 북·미관계 및 북핵 문제를 우려했다. 문재인 정부의 과감한 대북정책을 주문하면서 북한의 태도 변화와 적극적인 호응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 상황은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최근 북·미의 후속 대화가 주춤거리고 있긴 하지만, 꿈처럼 요원해 보였던 ‘항구적 한반도 평화정착’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두 사람을 다시 경향신문 창간 72주년 특별 대담에 초청해 지난 1년간의 변화와 향후 전망 등을 들었다. 대담은 지난 1일 경향신문 본사 여적향에서 이뤄졌으며 이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방북 등 변화된 상황에 대해서는 전화통화 등을 통해 추가로 들었다.
- 1년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변화가 일어났다. 한반도 상황이 급변한 배경은 무엇인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하 정 전 장관) = 지난해 11월29일 북한이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성공하고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것이 급반전 계기였다. 곧이어 올해 1월 신년사에서 남북대화를 제안하고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혔다. 미국도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대화에 나서게 된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현상의 뿌리였다고 본다.
문정인 외교안보특보(이하 문 특보) = 핵심은 북한의 이니셔티브다. 지난해 화성-15형 발사 이후 북한의 일방적 양상을 보면 상당히 계산된 움직임이다. 신년사에서 남측과 대화하고 평창 올림픽에 참가하겠다고 했다. 이어 4월 조선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사회주의 경제 건설을 포함한 3개 원칙을 발표했다. 이 같은 일련의 계산된 북한의 움직임은 필요조건이었다. 충분조건은 문재인 정부가 그 기회를 포착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변화를 미국과 연결시킨 중재자 역할도 하고, 미국이 안될 때 촉진자 역할도 했다. 북한이 적기에 이니셔티브를 쥐고 나왔는데 우리가 그 기회를 포착해서 잘 숙성시켜 나갔고, 미국은 그걸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이런 남북한과 미국의 전략적 셈법이 맞아들면서 지금의 반전이 온 것 아닌가 생각한다.
- 남북관계에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특히 지난 9월 평양공동선언은 역사적·상징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 전 장관 = 무엇보다 군사분야 이행합의서 내용이 의미가 있고 중요하다. 실질적인 남북 종전선언이라는 생각이 든다. 1991년 11월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의 두번째 불가침 분야 내용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군비감축 얘기는 판문점선언에 언급됐었지만, 실질적인 운용 차원의 군비통제까지 할 수 있도록 이번에 합의한 것이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종전선언이라는 게 비핵화 못지않게 우리 국민들에게는 피부에 와닿는 평화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문 특보 = 한국 언론은 평양공동선언 5조의 비핵화에만 주목하는데 그것도 의미가 있지만, 남북 간 신뢰구축과 운용적 군비통제에 관한 것을 왜 1조에 넣었는지를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제일 걱정하는 게 북한의 재래식 군사위협과 핵 위협인데 북한이 선제적으로 핵무기를 쓸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결국 비무장지대나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우발적 군사충돌이 일어날 경우 통제가 안되고 확전되면서 핵무기를 쓸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우발적 군사충돌 방지를 제도화시킨다는 건 한반도 평화의 반을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 폼페이오 장관이 7일 평양을 방문할 것이라는 발표가 나왔다. 향후 북·미대화를 전망해 달라.
문 특보 = 북·미대화는 폼페이오와 김영철, 스티브 비건 국무부 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그리고 김정은·트럼프의 정상 간 대화 이렇게 3개 축으로 이뤄져 있다. 이번에 폼페이오가 평양에 가게 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양측의 기본적 이견이 해소됐기 때문에 가는 것 아니겠나.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북·미대화가 진전을 이룰 것이다. 이번에 ‘빅딜’이 이뤄지고 비건과 최선희의 실무조율에 이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 결국 문 대통령의 평양방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경향신문 창간 72주년 기념 대담을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정 전 장관 = 문제는 미국의 태도다. 북핵 문제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미국이 북핵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말은 상호주의로 시작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북한이 먼저 행동하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한다는 식으로 합의했지만 실제로 보면 미국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일방주의로 풀려고 했다. 이번에 리용호 외무상이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면서 철저한 상호주의적 입장에서만 핵무장을 내려놓을 수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상호주의가 폼페이오 방북에서 과연 미국의 대북 제안 형식으로 구현될 것인가가 관건이다. 미국이 일방주의를 내세우면 북·미 협상이 다시 교착상태로 갈 수 있고 북·미 정상회담 개최도 어려워진다. 이번에 폼페이오 방북 일정이 너무 짧고 미국이 제안한 빈에서의 비건-최선희 회동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폼페이오가 북한에 가게 된 것도 불안요소다. 상황을 좀 더 신중하게 지켜봐야 할 것 같다.
- 톱다운 방식이 쉽게 대화가 깨지지 않도록 하는 효과를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미국에서는 잘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은 대통령 결정을 그대로 따르는 사회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있고 여론도 중요한 요소인데 그런 것은 톱다운 방식의 한계가 아닌가.
문 특보 = 톱다운이라는 것은 대통령이 얘기하면 바로 된다는 의미도 있지만, 정상끼리 소통을 통해 북한이 내놓은 카드가 미국 국내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카드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톱다운이 작동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북쪽 메시지가 자기가 볼 때는 본인에게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에 팔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톱다운이라고 해서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북한 제안이 의회와 여론을 설득할 수 있는 카드라고 보는 것이다.
- 미국이 북한 진정성을 의심하는 대표적 예가 종전선언인 것 같다. 북한은 왜 종전선언에 집착하는가를 충분히 설명했다고 보나.
문 특보 = 정부가 주장하는 종전선언은 4가지다. 첫째는 한반도에 비정상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전쟁을 종식시킨다는 정치적 선언, 둘째 적대관계 청산을 위한 불가침 선언, 셋째 평화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기존의 정전체제 유지, 넷째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체계의 연동 등이다. 종전선언은 평화조약을 맺게 되면 서문에 해당하는 것이다. 기초작업을 하자는 것이다. 종전선언하면 북한도 그에 맞춰서 비핵화의 구체적 행보를 보여야 한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것은 2가지 목적이다. 종전선언을 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를 추동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평화조약으로 가는 과정을 빨리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북한이 들고 나오거나 한·미동맹이 와해될 것 아니냐는 오해가 있다.
정 전 장관 = 종전선언이 되고 나면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정전협정이 그대로 살아 있어야 한다. 그것은 문 대통령이 설명을 잘했다. 평화협정이 정전협정을 대체할 때까지 유엔사는 그대로 존속한다고 봐야 한다. 북한이 스스로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고 하면서도 계속 종전선언에 매달리는 이유는 이를 통해 미국의 대북 군사적 적대행위를 현저하게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종전선언이 되면 중국과 러시아가 나서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 평양공동선언으로 남북 간에는 이미 종전선언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으니 이제 북·미만 하면 종전선언이 성립되는 것인가.
문 특보 = 그렇지 않다. 운영적 군비통제와 종전선언은 다른 의미다. 종전선언은 정치적이고 상징적 성격이 강하다. 평양선언 1조에 나온 부속합의서는 적대적 관계에 있지만 우발적 군사충돌을 막기 위해 신뢰를 구축하고 운용적 군비통제를 한다는 것인데, 그건 적대적 관계가 아직 해소되지 않은 것이다. 구조적 군비통제는 평화체제에서 다룰 수 있는 것이다. 지금 하는 것은 완전히 없애는 게 아니고 일종의 완충지대를 만들어서 우발적 충돌을 막는 것이다. 그런 상태를 넘어서자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 종전선언이다.
정 전 장관 = 지금은 종전선언 문제가 기싸움 비슷하게 됐다. 처음에는 북한도 종전선언에 비중을 안뒀던 것 같은데 이제는 알맹이가 있건 없건, 선언적이건 뭐건 종전선언을 받아내지 못하면 북한 정권 내지 협상 당국 책임자들의 책임 문제까지 나올 수 있을 정도로 비중이 높아졌다. 국내 정치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정세현 전 장관
외교라인 배제한 문 대통령 ‘남북관계 선행’ 의지 확고 제도적 통일(統一) 이전에 분단의 고통 줄일 수 있는 통일(通一) 먼저 해야
|문정인 특보
주한미군 주둔 문제는 한·미가 결정할 문제 문 대통령의 통일관은 경제-평화-통일이 서로 기능적으로 연결되는 것
- 북·미대화가 주춤거리고 있는 상태에서 남북관계가 너무 빠르게 나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 전 장관 = 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관계 개선의 부수적 효과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냥 연설문이었지만 나는 그것이 북핵 문제를 바라보는 문 대통령과 현 정부 통일외교안보 분야 참모들의 기본 입장이며 옳은 방향이라고 본다. 그간 한·미 공조라는 명분으로 미국과 보조를 맞추려 했지만 아무것도 안됐다. 그나마 남북관계가 한발 앞서가면서 북·미관계의 개선 여지를 조금씩 늘리고 북핵 문제의 접점을 만드는 식으로 끌고 갔을 때, 북핵 문제도 해결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미국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잘못된 원칙이다. 한발 앞서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걸 한·미 간 불협화음이라고 하면 운전자론도 성립될 수 없다.
문 특보 = 그 문제에 대해 문 대통령이 지난해와 올해 2번의 8·15 경축사에서 분명히 말했다. 지난해는 한반도에서 또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 우리 동의가 없는 군사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올해는 남북관계는 북·미관계의 부수효과가 아니라고 했다. 이 두 가지는 매우 설득력 있다고 본다.
-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진전으로 비핵화를 견인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 패턴을 보면 미국은 남북관계와 무관하게 미국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북한과의 대화를 열거나 닫는 식이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 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가 지난 1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경향신문 창간 72주년 기념 대담을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문 특보 = 남북관계와 한·미관계를 반비례로 보면 그런 우려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 북·미관계, 한·미관계를 선순환 관계로 보면, 남북관계가 되면 될수록 북·미관계도 좋아지고 한·미관계도 좋아지게 돼 있다. 사람들은 전부 남북관계, 한·미관계, 북·미관계를 반비례 관계에서 봤다. 거기에 핵심축을 워싱턴에 뒀다. 워싱턴 의향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남북관계가 잘되면 북·미 간 어려움을 전부 해소할 수 있고 남북관계가 잘되는 것이 미국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지금처럼 미국과 사전공조를 잘해서 끌고 가면 남북관계, 북·미관계, 한·미관계 3개 축이 선순환 관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가속도가 붙는 것은 좋은 일이고 권장할 일이다. 북·미관계 속도에 맞춰야 한다는 것은 역사의 순리에 어긋난다. 북한도 과거에는 ‘통미봉남’식 행태를 보였지만 지금은 북한도 패러다임 변환기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과거와 다르다.
정 전 장관 = 북핵 문제는 우리 문제인데 우리에게 해결권이 없다. 해결권은 북한과 미국이 가지고 있다. 다만 최대피해자는 우리가 된다. 그래서 우리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발 앞서가는 것인데, 그걸 북·미관계나 한·미관계를 나쁘게 한다는 식으로 발상하는 것 자체가 자기 문제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는 것이다.
- 남북, 북·미 대화 진행 과정을 보면 남·북·미 모두 외교 관료들을 배제하고 일을 진행시키는 것이 눈에 띈다. 그 배경은 뭔가.
정 전 장관 = 자업자득이다. 문 대통령의 철학은 확실하게 한·미관계를 불편하게 하면서 남북관계를 개선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한·미관계와 남북관계가 나란히 가야 한다는 생각은 안 가지고 있다. 외교 파트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남북관계가 한·미관계보다 앞서가면 안된다는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수적으로 많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 볼 때는 그 사람들과 얘기해서는 한·미 협의부터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게 되니까 뺐다고 본다. 북한도 계속 리용호 외무상이 아닌 김영철 통전부장이 나서는 이유는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를 이심동체로 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부적으로는 외무성과 긴밀하게 협의할 것이다.
- 외교부의 북·미나 북핵 라인에 일을 맡겨 놨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의미인가.
정 전 장관 = 그렇다. 명색이 북·미 라인이라는 사람들은 항상 미국 의중을 먼저 살피려 하고, 한·미관계, 남북관계가 나란히 가야 한다는 얘기만 하니까 문 대통령은 답답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이 사람들을 중용하지 않은 것을 보고 남북관계 선행론이 강하게 머릿속에 입력됐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북한도 유엔총회에서 리용호와 폼페이오가 만난 것을 계기로 리용호가 폼페이오의 카운터파트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김정은의 최종 결정을 받는 통로는 김영철이라고 본다.
문 특보 =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정보당국자 사이 교감으로 대화가 시작됐다. 그걸 북·미 정보당국자로 연결한 것이다. 원래 정보당국자들이 정책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폼페이오가 국무장관이 됐다. 지금은 과도기적인 것이다. 앞으로 폼페이오 장관과 리용호 외무상의 채널이 열릴 것 같다.
- 문 대통령이 미국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통일이 된 이후에도 주한미군은 동북아균형을 위해 필요하다고 했다. 중국은 이 부분을 경계할 것이다. 미국민들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정치적 발언일지도 모르지만 적절치 않아 보인다.
정 전 장관 = 문 대통령 발언이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 내 또는 우리 보수 쪽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기는 하다. 중국을 자극한다거나 중국의 국가 이익에 손해를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주한미군 문제를 확실히 매듭짓지 않고 우물쭈물할 수 있겠는가.
문 특보 = 주한미군, 한·미동맹은 평화조약과 별개로 한·미가 결정하는 문제라는 것이 문 대통령 생각이다. 1992년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 김용순이 아널드 캔터 미 국무차관을 처음 만났을 때도 통일 이후 주한미군 주둔 필요성에 대해 말했다. 단 주한미군 위상, 임무, 역할과 관련한 단서를 달았다. 그래서 통일 후에는 주한미군을 평화유지군으로 두자는 표현을 임동원 위원장이 쓴 것이다.
- 문 대통령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통일은 아무도 예상할 수 없고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문제라고 했다. 이 발언은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피해 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 가야 한다’고 했던 기존의 발언과 약간 다르다.
정 전 장관 = 지난 2월 김여정 일행이 특사로 왔을 때 청와대에서 통일이라는 배경 글씨를 두고 문 대통령과 사진을 찍었는데 그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쓰던 ‘통일(統一)’이 아니고 ‘통일(通一)’이었다. ‘통일(統一)’은 정부도 하나고 국호도 하나인 제도적 통일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건 안된다고 말할 필요는 없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고 언제 될지도 모른다. 그러기 전에 적당한 절차만 거치면 쉽게 왕래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생기도록 하면 사회문화적으로 공통성이 굉장히 높아진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분단으로 인한 불편이나 고통이 최소화될 것이다. 그 정도 되면 사실상 남북연합으로 2개의 정부가 긴밀히 협력할 수 있는 상호관계가 된다. 그런 관계를 ‘통일(通一)’로 개념을 새로 설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문 대통령도 완전한 통일 이전에 사실상의 통일, 서로 통해서 하나가 되려는 노력이 본격화되는 상태를 통일이라고 규정하지 않았나.
문 특보 = 문 대통령은 어떻게 보면 기능주의자다. 경제가 평화를 가져오고 평화가 통일을 가져온다고 하는데 그 역도 성립하는 관계다. 남북 간에 교류협력하고 신뢰구축하고 평화공존하려면 비핵화가 돼야겠지만 특히 경제부문에서 교류협력이 강화되면서 남북 경제공동체가 구축된다. 서해·경의선을 따라서 하나의 경제 축이 만들어지고 동해선을 따라서 또 하나 경제 축이 만들어져서 하나는 중국으로, 하나는 러시아로 가는 ‘H빔’ 형태의 경제공동체가 만들어지면, 바로 정 전 장관이 말한 하나의 민족, 두개의 국가, 두개의 체제, 두개의 정부가 되는 것이다. ‘통일(統一)’은 정치적 주권이 하나가 된다는 개념이다. 하지만 ‘통일(通一)’은 남북이 통함으로써 이질성을 극복해서 하나가 된다는 의미다. ‘통일(通一)을 거쳐야만 통일(統一)’이 이뤄지는 것이다.
유신모, 정희완 기자
출처: 경향신문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0050600095&code=910302#csidxee09aa3215d4f498c8f8fd0d92e36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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