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1호(2018/11)
김 숙 현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향후 북일 관계 전망과 과제
아베 정부는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발표 이후부터 북미회담 직전까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관망하는 자세를 유지하여 왔다. 남북정상회담이 3차례에 걸쳐 열리고 북미 간 협상이 시작되면서 아베총리는 지금까지의 입장과는 달리 김정은 위원장과의 대화를 할 용이가 있다는 점을 밝혔다. 이미 2월 아베 총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여 북한 김영남 최고 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대화하고 납치문제의 해결을 요청하였다.
북미정상회담 기간 중에는 야치국장을 싱가포르에 파견하여 북미정상회담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깊은 관심을 보였다. 북미정상회담 이틀 뒤인 6월 14일에 외무성 간부가 몽골에서 개최된 국제회의에서 북한 외무성 관계자와 비공식적으로 접촉한 것도 알려졌다. 그리고 8월에는 고노(河野太郎)외무상이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가한 북한 리용호 외무상과 접촉을 하였다.
아베 정부는 2018년 7월에 외무성에 북한 문제를 전담하는 동북아 2과를 신설하고 북한 문제의 비중을 가시적으로 높이는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지난 7월 베트남에서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내각정보관과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이 비밀리에 만나 고위급 회담을 했다는 보도도 있었으나, 진전된 사안은 없는 듯했다.
지난 9월 10일 대북 특사단이 방북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아베총리와 면담을 하였고, 이때 서훈 국정원장은 “아베총리가 이제는 본인이 직접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때라고 말했다.”라고 기자들에게 밝힌 바 있다. 이어 9월 11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와 만난 아베총리는 북일 관계 개선과 국교정상화의 의지를 전달했다. 아베총리는 9월 25일(현지시간) 제73회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과의 국교정상화의 의지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아베 총리의 제안에 대해 북측은 반응이 없는 상황이다.
표 1) 2018년 일본정부 차원의 대북 대화 현황
자료: 이형근, 최유정,“최근 한반도 정세 변화와 북일 경제협력 과제”『KIEP기초자료 18-21』2018년 9월 14일, p.17에서 일부 보완하여 재구성
이러한 일련의 일본 정부의 대북 대화를 위한 태도 변화는 북한이 한국과 미국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보이고 국제사회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기 시작하자, 이른바 ‘재팬 패싱’을 우려한 것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일본 내에서도 아베 총리의 대북정책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신뢰관계를 과신하였다고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문제로 소원해진 한일 간에 대화의 부족으로 문재인 정부와 소통하지 못했다는 비판들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문재인 정부의 외교를 과소평가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북일 관계에 가장 큰 장애요인은 납치문제와 북한의 핵, 미사일 도발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이 비핵화의 의지를 보이고 있고 북한의 핵문제는 일본에게도 중요한 이슈이나 지금은 북미 간의 협상으로 좁혀져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북일 간 쟁점은 결국 납치문제로 귀결된다. 향후 북일관계 개선을 위한 네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납치문제에 대한 북일 간 협의의 시작이 중요하다. 지난 1991년부터 시작된 북일 간 교섭을 통해 다양한 북일 간 대화 창구가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현재 북한은 북미 간 대화의 진행에 모든 역량을 동원하고 있어 일본과의 협상이나 대화의 재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북한은 북미 간 협의와 비핵화의 진전에 따른 경제제재의 완화조치가 이루어지게 될 것을 예상하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일본과의 수교나 협상은 당장 시급한 현안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베총리의 말대로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북일 간 대화나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을 위해서라면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사이에는 어느 정도 신뢰관계가 구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일 관계개선에 긍정적인 입장이고 북미 간 대화에도 중재자 또는 협력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일본 정부도 문재인 정부의 대북라인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둘째, 납치문제에 대한 북측이 수용할 수 있도록 장벽을 낮추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납치문제와 북핵 및 미사일 도발에 대한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재차 고려해야할 부분이다. 납치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응으로 일본 정부는‘대화와 압력’, ‘행동 대 행동’이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납치문제는 북핵 및 미사일 도발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 할 수 있다. 물론 포괄적으로 보았을 때 자국의 안전보장과 직결되는 문제임은 분명하나, 납치문제를 안전보장의 차원에서 접근하면 해결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이 있다. 지난 북미 정상회담의 의제에 납치문제를 상정해 달라고 아베총리가 요구하였다. 이러한 접근보다는 오히려 북일 간 직접대화를 통해 접점을 찾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구축된 북일 간 대화 창구를 적극 활용하고 납치문제와 북핵 및 미사일 문제 해결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이원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납치문제는 일본 국민의 정서나 여론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아베 총리의 정치적 결단은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내년 7월에 참의원 선거가 있고 지지율이 답보상태에서 납치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베 정부나 아베 총리 자신에게 있어서도 큰 모험이 될 수 있다.
셋째, 북미 간 비핵화협상의 진전과 이에 따른 일본의 정책변화이다. 미일동맹을 안보의 축으로 삼고 있는 일본은 북미 간 관계가 회복이 되고 발전이 되면 미국의 대북정책에 추종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안고 있다. 그러나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아베 정부의 기조에 따라 향후 북 미 관계 개선 이후의 동북아 정세와 흐름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북한의 핵폐기나 비핵화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5년에서 길게는 20년을 예상하기도 한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력도 필요하나, 향후 북일 간 경제협력 및 동북아 지역협력 등의 장기적인 전략 안에서 대북정책을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넷째,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과의 공조체제 강화이다. 아베정부가 해결하고자 하는 납치문제 및 북핵 미사일 문제는 미국 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관계 주변국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이번 남북관계 진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상 간 외교는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아베총리는 2012년 집권 이후 발 빠른 정상외교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뉴욕을 방문하고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와 환담을 나누었고, 유럽, 아세안 등 다양한 국가의 정상들과 외교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다.
또한 아베총리는 지난 10월 28일 중국을 공식 방문하여 시진핑 주석과 회담을 가졌다. 2012년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 영유권 분쟁 이후 냉각되었던 중일관계가 호전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의 무역 압박에 일본과 중국이 협력하기로 하면서 ‘자유무역 수호’메시지를 공동으로 발신하였고,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사업에도 참여하기로 했다. 이른바 아베총리의 ‘정경분리(政經分離)’전략이지만, 정상외교를 통한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비해 한국과는 여전히 소원한 관계이다. 2015년도 12월 위안부 합의 이후 한일관계는 일시적으로 호전되는 양상을 보였으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위안부 합의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면서 일본 정부는 크게 반발하였다. 물론 합의에 대한 파기나 재협상은 요구하고 있지만 않지만 여전히 위안부 문제는 양국 간 골 깊은 현안이다. 10월 30일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이 내려졌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일본으로부터 받은 돈에 강제징용 피해 배상금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고 개인배상 판결을 내리면서 한일 간 새로운 긴장국면이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아베총리 및 일본 정부는 강력하게 반발하였고 수용할 수 없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북일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한국 정부의 협조가 필요하고 한국도 한반도 비핵화프로세스나 북한의 비핵화 진전에 따른 향후 한반도 신경제지도의 실천을 위해서도 일본을 포함한 주변국의 협력이 요구된다. 이러한 시점에서 재차 역사문제가 한일 양국의 소통과 협력에 장애가 되지 않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한일 관계 방침과 같이 투트랙 차원에서 한일 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Issue Brief는 집필자의 견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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