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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호] 김숭배 전문연구원 - 남북관계 안정성과 북일관계의 진정 가능성 그리고 다시 한일관계로

제123호

김 숭 배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남북관계 안정성과 북일관계의 진정 가능성 그리고 다시 한일관계로

‘약속은 지켜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경구는 주권국가들 간의 약속이 개인 사이의 약속 이상으로 구속력을 지니며 국제법으로 효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이하 한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주권국가로 인정받고 있지만, 남북관계는 주권국가 간 관계가 아니라, 특수관계로 정의된다. 남북관계의 역사와 축적된 사상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2018년 4월 27일에 합의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이하 판문점선언)의 역사적 의미는 남북관계의 최종 귀착점이라고 여기는 통일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지금 눈앞에 있는 위험과 긴장의 해소, 전쟁의 방지에 비중을 두었다. 남북관계에서 안정성은 무엇보다 한국에게 가장 중요했다. 그러한 판문점선언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몇 가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명칭은 정체성을 드러낸다. 한국 쪽의 판문점선언에 있는 “한반도”란 표현을 북한 쪽에서는 “조선반도”로 명시한다. 통역 없이 언어가 통하는 남북에서 서로 다른 명칭의 사용은 관념세계의 차이를 드러낸다. 한반도 분단 이전의 대한제국 시기에는 ‘한반도’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한국병합조약(한일병합조약, 1910년) 이후, 주권국가의 지위를 잃게 된 대한제국의 한반도에는 일본의 법령에 의해 ‘조선’이라는 지역 명칭이 부여되었다.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를 부정하는 북한은 ‘대한’을 계승할 수 없었고, ‘한반도’라는 명칭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론 북한의 조선반도는 조선왕조(1392-1897)를 의미하기 때문에 일본이 부여한 명칭인 조선반도를 이은 것은 아니다.

둘째, 민족의 문제이다. 한반도와 조선반도라는 언어의 다름에서 느끼는 관념 차이가 있음에도 ‘민족’이 남북을 포괄할 수 있을까? 러일전쟁 이전, 대한제국에서는 정치적 구성원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인종과 국민이라는 단어들이 사용·공존되었다. 당시 ‘인종’은 동양과 서양을 구분하는 개념이었고, 20세기 초 동양적 인종을 내세웠던 일본은 이를 명목으로 동양평화를 제창했다. 따라서 대한제국에서는 ‘국민’ 개념이 강화되었다. 러일전쟁을 겪고, 1910년 한국병합으로 주권을 상실하게 된 상황에서 ‘민족’이라는 개 념이 정립되었고, 3·1운동을 계기로 확산, 정착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위에 따라 민족이란 한국뿐만 아니라 북한에서도 수용 가능한 정치적 용어이기도 했다. 특히 북한의 경우, 김일성이 수령으로서 내세운 주체사상에 민족주의적 색깔이 짙다. 정치적 자주, 경제적 자립, 국방에 의한 자위 등에서 나타난 북한 내부적 용어는 인민이며 대외적 표준은 조선민족이다. 판문점선언에서 언급된 “민족의 혈맥”이라는 말, 역시 북한에서 인식하는 전통적 민족성의 흔적을 보여준다. 결국 한국의 한민족과 북한의 조선민족은 판문점선언에서 사용한 ‘우리 민족’이라는 정치적 용어에 ‘겨레’를 포섭하고, 개념뿐만 아니라 고유명사로 남게 될 수도 있다.

셋째, “양 정상은 냉전의 산물인 오랜 분단과 대결을 하루 빨리 종식시키고 민족적 화해와 평화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과감하게 열어나가며”라는 문구다. ‘냉전(cold war)’은 종식되었으나, 여전히 한반도는 냉전의 산물로 분단과 대결이 지속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해 화해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1945년 이후, 서양권에서 전파된 냉전이라는 용어는 강대국 미국과 소련의 전쟁하지 않는 대결적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냉전의 또 다른 기원을 찾으면, 1917년 볼셰비키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이때부터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 대립이 시작되었다. 한반도에서 공산주의가 수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세계적 공산주의의 전파력과 더불어 일본에 저항할 수 있는 자원과 사고를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넷째, 한반도에는 냉전과 반대로 열전(hot war)인 6.25전쟁이 발발했다. 분단을 공고화시켰던 6.25전쟁의 시작은 북한의 남침으로 정착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전쟁들은 평화조약을 통해 공식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평화조약은 평화의 회복, 전쟁의 승패, 이에 따른 배상 등을 규정한다. 이미 65년이 훌쩍 지난 지금 시점에서 6.25전쟁 정전선언을 한다면, 여기에 전쟁책임을 명시하는 것은 남북관계에서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전통적 평화조약과 다른 평화협정 혹은 책임의 소재를 밝히지 않은 채, 화해로 나아갈 것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보다 과거에 대한 망각으로 역사를 만들 수 있는 것 역시 민족의 특권이기도 하다.

다섯째, 판문점 선언의 내용 중 “당면하여 오는 8.15를 계기로 이산가족‧친척상봉을 진행하기로 하였다”는 구절에서 8.15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탄생이 아니라,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날이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에게 8월 15일은 패전보다 ‘종전기념일’로 규정되어 있지만, 한반도에서는 남북이 함께 기리며 맞이하는 해방의 날(광복절)이기도 하다. 즉, 판문점 선언에는 ‘일본’이 등장하지 않아도 일본의 과거와 한반도의 역사를 무시할 수 없는 연혁성이 내재되어 있다.

한반도에 국제공산주의가 유입되었을 때, 무조건적으로 공산주의를 수용한 자도 있었고, 공산주의를 수용하는 동시에 반제(反帝)를 내세웠던 사람들도 있었다. 김일성이 북한에서 권력을 장악하며 내세운 정당성 중 가장 큰 역할을 한 것도 항일투쟁이었다. 이렇듯 한반도는 일본과 지정안보적 관계뿐 아니라, 역사적인 연계성이 있기 때문에 남북관계의 진전이 일본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일본 연구자들은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2002년 북일평양선언은 “과거의 식민지 지배”를 명기함으로써 1965 년 한일기본조약과 달랐다. 후자는 최근 강제징용 배상 문제로 다시 과거사 문제를 이슈화했다. 이에 반해 2002년 북일관계는 한일관계와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납치문제의 부상이다. 이는 당시의 고이즈미총리의 외교적 선택의 폭을 줄였고, 대신 납치문제에 대해 강경파이자 당시 내각 관방부장관이었던 아베 신조를 부상시켰다. 납치문제의 해결을 내세우며 총리(2006년, 2012년)에 올랐던 아베 신조 총리는 학원 스캔들로 지지율이 하락했던 2017년 선거에서 북한의 미사일 문제라는 북풍으로 긍정적 효과를 얻었다. 아베 신조 총리는 2018년 10월 소신 표명에서 북한과의 “상호불심의 틀에서 벗어나 납치, 핵, 미사일의 문제를 해결하고 불행한 과거를 청산함으로써 북한과의 국교정상화를 목표로 한다”고 천명했다. 유동적인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북일의 접근에서 반드시 과거사가 문제로 제기될 것이다. 과거사에 대한 양국 간 처리방법으로 인해 아직까지 한일관계에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과거의 노예가 되면 안 되지만, 과거의 무게는 북일관계에서 다시 한일관계로 환원될 공산이 크다.

Issue Brief는 집필자의 견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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