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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호] 정주영 전문연구원 - 개혁세력 중심의 중국 개혁개방 경험 분석과 북한에 주는 함의

제124호

정 주 영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개혁세력 중심의 중국 개혁개방 경험 분석과 북한에 주는 함의

지난 해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 이후부터 한반도 평화정착과 북한 개혁개방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한창 커지고 있으며, 이러한 분위기는 북한이 과연 어떠한 모델을 따르고 어떤 과정으로 개혁을 전개해야하는지에 대한 논의로 연결되고 있다. 북한의 개혁개방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거론되고 또 연구되는 것은 아무래도 중국의 개혁개방 경험일 것이다. 그러나 그간의 중국 개혁개방 경험은 모델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으며, 모델의 북한 적용 가능여부에 대한 관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가된다. 모델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것이 행위자이며, 따라서 모델에 대한 논의 이전에 개혁의 행위자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개혁개방을 추진했던 개혁세력에 대한 분석은 향후 북한 개혁개방의 가능성과 전망에 중요한 분석의 기준들과 실질적 함의들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중국은 소련을 비롯한 동구의 다른 국가들보다도 일찍 개혁개방을 시작했으며, 체제가 완전히 몰락한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혁 과정과 달리 공산당 체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경제적 체제전환과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변화를 점진적으로 이루어 왔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모델로 인식되고 있다. 개혁개방의 전체 과정을 개혁의 시작과 심화 및 공고화의 과정으로 크게 나누어 보았을 때, 개혁의 초기 단계에는 새로운 개혁 세력의 등장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개혁의 성공여부는 기존 체제를 반대하고 새로운 변화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개혁의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실질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는 개혁 세력의 능력에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나 중국과 같이 시장이나 시민사회가 거의 부재한 상황에서 개혁개방을 주도해 온 조직이 국가를 실질적으로 통치해온 공산당, 즉 권력 엘리트인 경우에는 개혁세력의 존재와 그 역할이 개혁 과정에 필수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개혁 초기에 개혁세력의 역할과 관련한 중국의 경험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첫째, 개혁의 주체 세력이 명확히 존재해야 하며, 둘째, 다양한 의견과 입장을 갖는 정치 엘리트들을 규합하거나 정치투쟁을 통해 통제해서 궁극적으로 개혁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안착화 시킬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며, 셋째, 정치적 의제와 비전 제시를 통해 개혁의 정당성을 높여야 하고, 넷째, 개혁에 필요한 간부 양성과 개혁지지 세력을 규합하며 개혁연합 세력을 확대·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중국에는 개혁개방 전후의 전(全)과정에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하는 명확한 개혁 주체 세력들이 존재했으며, 그들은 다양한 다른 파벌들과의 경쟁과 투쟁에서 승리하고 개혁개방을 꾸준히 견지해나갔다. 중국에서 개혁세력의 형성은 이미 마오쩌둥 통치기부터 시작되었는데, 마오쩌둥의 발전방식에 반대하였던 실용주의적 정치 엘리트들이 대약진과 문화대혁명의 사건을 겪으면서 대항적인 개혁세력으로 성장하고, 그들이 마오의 死後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결집하였다.

둘째, 덩샤오핑의 지도자로서의 리더십이 복잡한 파벌간의 정략 투쟁에서 개혁 세력이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게 한 중요한 요인이었다. 개혁개방 초기는 복잡하고 다양한 정치세력 간의 대립과 갈등이 점철되었던 위험하고 불안한 과정이었다. 개혁개방이 시작되는 전후의 시점에 정치적 지형은 크게 홍(紅)과 전(專) 혹은 보수파와 개혁파로 대별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문혁 주도자(극좌파: 4인방), 문혁 수혜자(온건 좌파: 화궈펑), 문혁 피해자(개혁파: 덩샤오핑), 문혁 생존자(중도적 원로파) 등으로 나뉘어 마오쩌둥 사후의 권력 장악을 위해 복잡하게 권력 투쟁을 전개하였으며, 개혁개방이 시작된 이후에도 진보적 개혁파와 보수적 개혁파로 나뉘어 개혁개방의 속도와 방향을 두고 정책 및 정치 투쟁을 치러냈다. 이처럼 복잡한 정치 지형과 극렬한 정치 투쟁의 과정에서 덩샤오핑을 비롯한 개혁세력들은 협력이 가능한 다른 세력들과 연합세력을 구축해 공동의 적을 퇴출해 내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권력을 확대시켰다. 즉, 덩샤오핑은 보수파와 개혁파 간의 갈등과 대립에서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지속적으로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는데, 문혁 주도세력 척결을 위해 형성한 반좌파 연합, 화궈펑과의 대립 과정에서 형성한 개혁연합세력, 그리고 보수적 개혁파와의 관계에서 보였던 균형과 조정능력 등은 중국의 개혁개방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처럼 다양한 정치세력 간의 대립과 갈등에서 덩샤오핑의 균형 유지와 조정 능력은 개혁 노선을 유지할 수 있었던 필수적 요건이었다.

셋째, 개혁세력은 노선전환, 개혁을 위한 담론주도 및 이론의 개발 등으로 개혁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확대해 나갔다. 덩샤오핑은 이미 1960년대 ‘흑묘백묘’론의 제시를 통해 실용주의적 경제 발전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했으며, 1978년 11기 3중전회에서 ‘한 개 중심(경제발전)과 두 개의 기본점(개혁개방과 4항기본원칙견지)’을 통해 경제발전을 핵심으로 하는 개혁개방을 당의 노선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개혁의 심화 단계에 맞게 “사회주의 초급단계론”, “생산력 표준론” 그리고 이를 좀 더 확대발전시킨 “3가지 유리(有利)” 등으로 개혁개방과 경제정책 추진의 정당성을 이론적으로 합리화시켰다.

넷째, 개혁세력은 개혁 지지 세력을 규합하고 개혁에 필요한 간부를 양성했다. 덩샤오핑은 끊임없이 새로운 지배연합을 등장시켜 개혁개방의 정치적 기반을 확대했고, 개혁을 위한 세력을 규합해 냄으로써 개혁의 지지 세력들을 유지하고 확대시켰다. 또한 덩샤오핑은 개혁 초반부터 간부의 4화(연소화, 지식화, 전문화, 혁명화)를 주창하면서 젊고 전문적인 지식과 기능을 가진 신진관료계층을 대거 등장시켰으며, 이들 신진관료계층들이 중심이 되어 중국 사회에서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기술관료, 고급지식인, 직업군인의 지배동맹이 형성되면서 중국은 신권위주의 개발 국가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이러한 중국의 경험을 북한에 반추시켜 본다면, 북한 개혁개방의 관건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북한에도 명확한 개혁세력이 있는가, 김정은이 개혁을 견지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개혁세력들이 지속적으로 개혁의 정당성을 심화시키고 개혁세력을 확대·강화시켜 나갈 수 있는가의 문제라 할 수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평가를 해보면, 우선 김정은의 개혁의지가 이전 지도자들보다 강하다는 것과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박봉주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 내각의 권한과 역할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을 통해 개혁 지배연합이 형성 가능성을 전망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개혁지배연합의 규모와 권력의 정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고, 개혁의 방향을 선회시킬 수 있는 여타 변수들의 영향력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직까지 개혁세력이 확고하게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불확실함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건설 집중으로 노선 전환과 우리식 경제 관리방법 등의 발표를 통해 정치 엘리트 간 개혁의 정당성에 대한 합의가 상당 정도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으며, 또한 관료조직과 엘리트의 특징에서도 전문성과 기술 중심의 실용주의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보여 진다. 따라서 김정은이 위로부터의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려면, 개혁개방의 단계마다 다양한 세력 간의 갈등을 조정하면서, 국가경제력 강화의 논리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리더십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혁명원로들을 퇴진시키고, 기술 관료들을 대거 등용하면서 개혁세력이 주축이 되어 실용주의적인 신진기술관료, 고급지식인, 직업군인 간의 새로운 지배동맹을 형성해야 한다.

Issue Brief는 집필자의 견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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