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호
홍 건 식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미중 화웨이 갈등과 한국 전략은 시장이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적 쟁점은 한일간의 역사·정치적 갈등이 무역갈등으로 표면화되면서 한일갈등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한일 무역 갈등 이전에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있었으며 이 두 국가의 갈등 양상은 현재도 지속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에서 중국에서 만든 5G 장비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었으며, 화웨이 측 또한 통신장비를 압류한 미 상무부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중국은 중국 내 관련 기업을 불러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압박에 협조하지 말 것이며 이에 대한 협조의 움직임을 보인다면 응징을 가할 수 있다는 경고를 했다고도 알려졌다. 여기에는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와 델, 삼성과 SK하이닉스, 영국의 반도체 설계업체인 ARM 등이 포함됐다. 또한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중국의 통신장비 기업 화웨이를 겨냥해 5G 보안 측면에서 신뢰할 수 있는 공급자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어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떠안게 되는 듯하다.
미국이 중국의 통신장비 업체를 제재하는 원인에 대한 논의는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미중 간 세계 패권을 둘러싼 경쟁이 무역을 시작으로 군사 그리고 기술 더 나아가 표준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논의, 둘째로 헌팅턴과 같이 미국과 중국의 문명 충돌이라는 주장, 그리고 더욱 직접적으로 화웨이의 중국 공산당 간 유착관계와 대이란 제재법 위반으로 미국의 첨단 기술과 핵심 부품 등이 화웨이에 넘어가는 것을 봉쇄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조치라는 주장 등이 있지만 차세대 통신기술인 5G에 대한 화웨이 굴기를 막으려 한다는 관측이 주를 이룬다. 일찍이 미국 상무부는 중국의 ZTE가 북한과 이란에 통신장비를 판매했다는 이유로 ZTE를 블랙리스트에 올렸으며 거액의 벌금, 경영진 교체, 미국의 상시적 감시 등의 조건으로 제재를 해제했다.
이 같은 미국과 중국의 경쟁 양상이 심화한다면 이는 고스란히 한국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산업연구원은 "미중 통상분쟁 장기화가 우려되는 가운데 최근 중국 화웨이 사태로 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 정보기술(IT)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이 우려된다"고 설명하며, 올해 경제성장률이 지난해보다 0.3%포인트 낮은 2.4%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화웨이는 SK하이닉스 매출의 12%, 삼성전자 매출의 3%를 차지하는 수요기업으로 사태가 악화한다면 한국 반도체 수출에 악영향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 미중간 화웨이 갈등 양상이 더 근본적으로 무엇 때문에 발생하였는가에 대한 보다 심사숙고한 논의는 부재하다. 현재의 미국과 중국의 경쟁 양상이 패권 경쟁, 무역 갈등, 문명충돌이라는 경쟁과 갈등의 측면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갈등의 상황에서 ‘우리와 너희들’, ‘나와 타자’라는 이분법적인 선택을 할 수 없으며, ‘우리’를 가질 수 있지만 동시에 ‘타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경쟁 양상이 기술표준 경쟁이라면 우리는 다른 선택지를 찾아야 한다. 마치 병에 대한 진단에 따라 처방이 달라지는 것과 같이 말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그 병의 원인을 올바르게 진단하고 제대로 된 처방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한국에게 미국과 중국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국가이다. 한국과 미국은 한미동맹을 구심점으로 하여 한국의 안보 더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평화 구축에 핵심적 요소이다. 한편 중국은 2018년 한국의 전체 수출에서 중국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6.8%에 달하며,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대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인 수출 의존도도 10.0%인 경제 파트너이다. 무엇보다도 이 두 국가는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신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도 이들 국가의 지지와 협조는 필수적이다. 따라서 한국의 미국과 중국에 대한 이익은 그 형태는 다르지만 그 무게는 서로 비교하기 어렵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언제든 협력의 모습으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내포하고 있어 우리의 더욱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번 ‘중국 송환법’을 반대하는 홍콩 시위에 대한 중국의 대응을 본다면 중국 정부 또한 국제 여론과 경제 문제를 인식하고 있으며 현상타파적인 움직임에서 언제든 현상유지로 입장을 전환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이 협력 관계로 변화되었을 때 과연 ‘우리’ 아닌 ‘너희’가 한국을 어떻게 대하게 될지는 예측이 가능한 사안이라 생각할 수 있다. 미중 양국 정상은 미-중 무역 분쟁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에서도 양국의 대화는 계속될 것이라 밝힌 바 있으며, 작년 12월에는 공식 무역협상 재개와 미국의 중국에 대한 추가 관세 보류를 합의한 정상담판에서 공식 무역협상 재개와 함께 추가관세 보류를 합의 사례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번 화웨이 사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국가의 선택이 아닌 개인의 선택일 수 있으며 그 선택은 결국 시장이 결정할 것이다. 합리적 인간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용을 얻을 수 있는 소비를 하는 존재이며, 생산자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내야 한다. 또한 시장은 이들 소비자와 생산자의 경제 활동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하며 제품의 가격과 물량을 결정한다. 따라서 화웨이의 문제는 제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들이 판단해야 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부는 시장이 잘 작동되고 경제적 행위자가 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다시 말해 화웨이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화웨이 제품을 사용했을 경우 그 제품이 경제적 행위와 개인의 권리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에 대한 정보를 더욱 명확히 제공해야 하며, 이를 통해 국민들의 시장에 대한 불확실성을 낮출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어떠한가? 최근 정부는 “기업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군사 통신보안에 영향을 주지 않는 방안을 강구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어 일정 부분 시장의 자율성과 군사 안보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아직 화웨이 제품이 개인 권리와 정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실질적인 문제가 개개의 국민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설명은 명확하지 않다.
현재의 화웨이 사태는 미중간 기술패권의 최전선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비디오 플레이 규격이라 할 수 있는 베타방식과 VHC의 경쟁, 우리가 사용하는 키보드의 세벌식과 두벌식의 싸움일 수 있다. 이들 선발주자와 후발주자의 기술 경쟁은 결국 소비자가 결정했다. 이 같은 선례를 비추어 본다면 미중 패권 경쟁을 차치하더라도 우리 정부는 국민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며 국민의 소비 불안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화웨이 사태가 혹자가 주장하는 신냉전 구도의 최전선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냉전과 같은지에 대해서는 더욱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그것이 현재의 강대국 갈등에서 우리의 자주성을 확보하는 방편일 수도 있다.
● Issue Brief는 집필자의 견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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