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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호] 박찬봉 전문연구원 - 북한의 베트남식 개발과 한국 기업의 역할

제132호

박 찬 봉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북한의 베트남식 개발과 한국 기업의 역할


미국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2018년 7월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베트남식 개발을 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올해 2월 26일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북한의 핵 문제 해결 대가로 북한의 베트남식 개발 지원을 언급하였다. 이어진 미북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언급되었는지 그리고 이에 대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반응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럼에도 미 국무장관의 언급에 이어 미북 정상회담 장소가 베트남으로 합의되었고 북한이 폼페이오 장관과 트럼프 대통령의 베트남식 개발 언급에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한동안 한껏 기대감을 부풀리던 북핵 문제 해결 전망이 이달 초 스톡홀름 미북 실무회담 결렬로 인해 주춤하면서 북한의 베트남식 개발과 장차 북한 진입을 꿈꾸며 상황 추이를 지켜보던 우리 기업들의 실망도 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이 언제까지나 지금 그대로의 경제 체제를 지속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과 이웃에 국경을 접하고 북한이 현 경제 제도 구축의 모델로 삼았던 바로 그 중국과 러시아를 선두로 구 공산권 국가들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버리고 개혁 개방에 나선 지 오래다. 지금 북한은 ‘장마당’이라는 비공식 시장경제에 의하여 ‘과도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북한의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하겠다. 이하에서는 북한의 베트남식 변화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의 역할과 이를 위한 북한 내 요건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1980년대 말 공산 진영이 개혁 개방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을 때 개발경제학계와 관련 학계에서는 이를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두고 많은 논의를 전개하였다. 동유럽 국가들의 빅뱅식 전면적 변화와 중국 및 베트남식의 점진적 변화가 대안으로 경합하였는데 대체로 세계은행과 IMF를 위시한 워싱턴 국제금융기관들이 주장해온 전면적 접근이 대세를 형성하였다. 전면적 개혁 개방은 정치와 경제 분야의 변화를 동시에 추진하고, 경제 영역에서도 자유화(liberalization), 안정화(stabilization), 사유화(privatization), 사회 보장 조치(social safety)를 동시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이다. 반면에 중국과 베트남은 정치 분야의 변화를 유보하고 경제 분야에서도 개혁 개방 조치와 기존의 사회주의 계획 경제 요소를 병행하는 이중 궤도(dual track) 체제를 채택하였다. 그 뒤로 최근에는 이 두 방식의 효과를 평가하는 조사들이 진행되었다. 2000년에 발표된 IMF의 ‘체제 전환 경제 10년 보고서,’2016년에 발표된 미국 CATO 연구소의 ‘구 공산권 국가의 개혁 25년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두 보고서는 한결같이 전면적 방식이 더 바람직한 결과를 얻은 것으로 결론 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모델로서 베트남식 개혁 개방이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전면적 변화에 따를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이다. 게다가 북한과 베트남은 같은 아시아 문화권에 속하고 베트남은 중국보다는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 북한의 모델로서 적합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역으로 말하자면 베트남 모델은 북한의 개혁 개방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기 때문에 북한이 이마저 거부 한다면 진정한 변화의 의지를 의심받을 수 있다는 의미가 전제된 셈이다. 우리와 국제사회의 기대에 호응하여 북한이 베트남식의 점진적 변화를 수용한다면 북한은 ‘자립적으로’ 제반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개발경제학의 관점에서는 특히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1940년대부터 빈곤 문제를 설명하는 논리로 제시되어온 빅 푸쉬(big push) 이론이다. 콜롬비아 대학의 제프리 삭스 교수는 2005년 발행된 저서 ‘빈곤의 종말(The End of Poverty)에서 빅 푸쉬 이론을 부활시켜 개발도상국들은 ‘빈곤의 굴레(poverty trap)’에 묶여 있어서 독자적으로 이를 벗어나기 어려우므로 국제사회가 통 크게 지원(big push)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른 하나는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제도주의적 주장이다. 2012년 MIT의 경제학자 다론 아제모을루(Daron Acemoglu) 교수와 하버드대학의 정치학자 제임스 로빈슨(James Robinson) 교수는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에서 남북한의 사례를 38선의 경제학이라는 절에서 대조적으로 예시하면서 국가 빈곤의 원인이 폐쇄적인 제도에 있음을 설파하였다. 이러한 제도적 변화 없이 빅푸쉬 만으로 저개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베트남식 북한 개발을 위해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 두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경제는 조선 시대의 낙후 경제에 이어 식민지 수탈경제 그리고 공산주의 폐쇄경제를 거치며 현대적 시장경제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반면에 북한의 이웃 중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은 해방 후 70여 년, 중국과 러시아도 30년 이상의 시장경제를 통하여 경쟁력을 키워왔다. 북한이 이들 나라의 기업들과 경쟁할 상대가 되지는 못하기 때문에 북한은 이 나라의 기업들이 북한에 투자하여 고용을 확대하고 경제를 발전시키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외국 정부 차원의 지원을 생각할 수 있지만, 개발원조(development aid)가 자국 기업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활용되고 있음은 국제사회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북한은 북한 밖에 있는 기업의 중심적 역할 그리고 최대한 많은 기업의 참여가 불가피함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북한의 경제 개발을 위한 선도적 역할은 한국의 주요 기업들이 맡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기업들은 같은 동포인 북한 주민들을 돕고 통일 과정에 동참하는 것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또는 이보다 더 발전된 개념인 공유가치 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 교수는 기업 경영을 가치 창조의 과정(value chain)으로 보고 그 전략적 목표는 공유가치를 창조하는데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기업들은 북한의 개발에 더욱 적극성을 가지고 선발 주자(first mover)로서 참여할 것이다. 그러면 외국의 기업들은 한국 기업들의 움직임을 보며 앞선 추격자(early follower) 또는 후발주자(late mover)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기업의 해외 진출에는 현지 정보와 인적 네트워크 등 사업 기반이 중요한데 이 점에 있어서 외국 기업은 한국 기업에 경쟁 상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외국 기업들은 이미 한국에 진출해 있는 사업 조직이 북한까지 포함하도록 사업의 지역 범위를 확장하거나 한국 기업과의 제휴(alliance)를 통해 위험을 분산하는 투자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볼 때 북한의 베트남식 개발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관건은 어떻게 한국 기업의 대북 투자를 유도할 것인가 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 및 외국 기업의 입장에서 어떤 조건이 맞아야 북한에 투자할 것인가를 따져보지 않으면 안 된다. 기업들은 해외 시장 진출에 앞서 SWOT(Strength, Weakness, Opportunity, Threat) 또는 PESTLE(Political, Economic, Socio-cultural, Technological, Legal, Environmental) 분석 등의 기법을 통해 투자의 안전 여부를 철저히 조사한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기업들의 자유롭고 원활한 활동을 보장할 북한 내의 법 제도적 기반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더글러스 노스(Douglas North) 교수는 제도를 경제 주체들이 행동할 게임의 규칙(rules of the game)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런 게임의 규칙이 없고 있어도 신뢰할 수 없다면 경제적 거래가 어렵게 되고 위험부담에 따른 거래 비용(transaction cost) 증가가 초래되어 경제는 위축되고 기업은 경쟁력을 잃어 생존할 수 없게 되고 만다.

제도 측면에서 한국 및 외국 기업들이 북한에 진입하는데 불가결한 요소는 대체로 다음의 세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겠다. 첫째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각종 규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북한은 핵 및 미사일 실험 등으로 인한 각종 제재를 받고 있다. 이 제재 하에서는 한국은 물론 세계 어느 기업도 북한 내에서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북핵 문제 해결은 북한 투자의 가장 선결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외에도 북한은 천안함 폭침 이후 우리 정부의 대북 5.24조치로부터도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두 규제가 풀려야 한국 기업들은 북한에 진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북한에 진입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은 과거 COCOM의 후속 제재인 Wassenaar 체제와 각종 대량살상무기 및 미사일 관련 규제에 따라 무기류는 물론 컴퓨터와 같이 군사적으로 이용 가능한 이중 용도 품목 등에 대해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어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 또한 시급하다.

둘째로, 한국 및 외국 기업들이 북한 내에서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적어도 베트남 수준의 시장경제 요소를 제도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체제 전환의 전면적 접근론이 강조하는 것은 경제 분야의 개혁 개방 과정은 많은 저항과 어려움을 동반하기 때문에 그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국민적 지지가 뒷받침된 민주적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정치적 변화 없이 북한의 현 집권층이 지난한 개혁 개방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북한은 1984년 합영법 제정을 필두로 나진 선봉을 비롯한 다수의 경제특구 개방 등의 조치를 취했으나 아직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하지는 못하고 있다. 북한은 개혁 개방의 폭을 획기적으로 확대할 뿐 아니라 그러한 변화가 정치 등의 요인에 의해 후퇴되지 않을 것을 북한 밖의 기업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끝으로, 북한은 특히 한국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북한에 투자할 수 있도록 적어도 외국 기업보다 불리하지 않은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 북한은 한국의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대응하여 2005년 ’북남경제협력법‘을 제정한 바 있다. 같은 법 제1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남경제협력법은 남측과의 경 제협력에서 제도와 질서를 엄격히 세워 민족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한다”라는 ’북남경제협력법의 사명’을, 제4조는 “북남경제협력은 전 민족의 리익을 앞세우고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보장하여 호상 존중과 신뢰, 유무 상통의 원칙에서 진행한다”라는 ’북남경제협력원칙’을 각각 밝히고 있다. 이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1조가 “이 법은 군사분계선 이남 지역과 그 이북지역 간의 상호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간략히 규정하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이러한 북한의 남북 경제협력에 대한 인식은 남북 간의 경제협력을 활성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고 기업의 자율성보다는 전 민족의 이익이나 유무 상통 등 기업을 압박하는 내용을 기초로 하고 있어 한국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미흡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기업의 공유가치 창조는 어디까지나 각 기업이 자율에 의해 전략적으로 판단할 것이지 정부 당국이나 법이 강제할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남북 경협 정책 추진 과정에서도 북한의 부정적 내지는 소극적 태도는 남북 경협의 큰 장애 요인으로 작용해 온 만큼 앞으로 북한이 베트남식의 변화를 받아들인다면 이러한 관행을 시정하여 한국 기업들이 활동할 수 있는 최대한의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북한이 베트남식의 변화를 수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큰 결단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북한은 그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길 만이 북한, 한국, 해외의 8천만 한민족 모두가 함께 잘 사는 길이다. 이웃 나라들과도 평화롭게 사는 길이다. 북한 당국의 통 큰 용기를 기대해 본다.

● Issue Brief는 집필자의 견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이슈브리프 1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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