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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호] 이병재 전문연구원 - 감정, 정책, 선호, 실험

제140호

이 병 재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감정, 정책 선호, 실험

사회과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인과관계의 규명이다. 자연과학과 달리 일반적으로 관찰 데이터를 사용하는 사회과학 분야에서 인과관계의 규명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인과관계의 규명에 반드시 필요한 무작위화된 통제상황을 실제 상황에서 재현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회과학에서 인과관계의 용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예컨대, 선거가 민주주의를 가져온다 혹은 경제발전이 민주주의를 가져온다 등), 엄밀히 말하자면 이런 식의 주장은 인과관계라 말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인과관계 규명을 위해 최근 들어 서베이 실험(survey experiment)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실험이 어려운 사회과학에서 서베이 실험은 특정 대상 혹은 정책에 대한 태도나 효과 등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서베이 실험을 활용한 감정과 정책결정의 연관에 대한 연구를 소개하고자 한다. 사실 감정이란 인간의 동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이면서도 양적 사회과학 연구에서 주변부에 머물러 온 것이 사실이다. 심리학자들은 분류에 따르면 기본 감정에는 공포(fear), 분노(anger), 기쁨(joy), 슬픔(sadness), 놀람(surprise), 그리고 역겨움(disgust)이 포함된다.

최근의 연구들은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적 성향이 역겨움에 대한 태도와 연관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진보적인 사람들보다 보수성향의 사람들이 혐오스러운 장면이나 사진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McAuliffe 2019), 보수적인 정치성향의 사람이 역겨움(disgust), 특히 타인의 타액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민자나 소수집단 등에 대해 반대하는 정책을 지지하는 경향이 높게 나타난다. 사회경제적 배경 및 성장배경과 역겨움에 대한 태도를 연결 짓기도 하지만, 사회경제적 배경을 통제한 분석에서도 이 둘의 상관관계는 견고하게 관찰되고 있다. 그렇다면, 역겨움 외에 다른 감정이 정치적 태도나 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 것이 있을까?

최근 Annika Fredén(Kalstad University)은 공포의 약한 형태인 불안에 대한 태도와 정책에 대한 입장을 실험 방법을 통해서 분석하였다. Fredén의 연구는 죽음의 위협에 대한 민감도와 주요 정책의 상관관계를 잠재적 의미분석(Latent Semantic Analysis) 방법을 활용하여 연구한 것이다. 이 연구는 2016년 6월 브렉시트(Brexit)에 대한 투표 직전 인터넷으로 모집한 청년 인구 4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온라인 실험이었다. 실험 절차는 다음과 같았다. 일단 피험자들을 무작위로 두 집단으로 나눈다. 한 집단의 참가자들에게 자신이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을 생각해 본 후, 자신의 몸에 어떠한 반응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는가,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의 감정이 어떨 것인가를 기술하도록 요구하였다. 다른 집단인 대조군에 해당하는 집단은 죽음 대신 치과에서 치료받을 때의 느낌을 묘사하도록 한다. 두 집단 모두 자유롭게 기술하고 난 후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단어 5개를 제시하도록 하였다. 모든 피험자들의 위험회피지수(social risk aversion)도 측정되었다. 최종적으로 피험자들의 브렉시트에 대해서 찬반에 대한 의견을 조사하였다.

연구 질문은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이 심리적인 성향에서 차이가 있을까?”였다. 사회적 위험회피지수 등에서는 찬반 집단 간에 유의미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의 심리상태를 기술한 5개의 단어에 대한 의미론적 텍스트 분석에서만 찬반 집단 간에 유의미한 차이가 발견되었다. 개인 간 감정의 섬세한 차이를 포착하기 위해서 의미론적 텍스트 분석을 활용한 유사도 분석이 유용하다. <그림 1>의 워드클라우드(wordcloud)는 죽음의 위협을 상상한 집단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심리상태 묘사에 사용한 단어들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단어의 글씨 크기는 빈도에 비례하며, 큰 글씨(예컨대 anxious나 worried)는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사용한 단어이다.

Fredén이 이 서베이 실험을 통해 발견한 것은 불안(anxiety)과 관련한 단어를 많이 열거한 응답자들이 현상 유지(status quo), 즉, 브렉시트 반대를 지지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점이다. 브렉시트 찬반집단 간의 차이는 대조군인 치과 집단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인구학적, 정치적인 변수들을 포함시킨 통계분석에서도 이러한 차이는 여전히 유의미하게 나타났다. 즉, 죽음 등의 심각한 위협에 불안함을 크게 느끼는 사람들이 정책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변화보다는 현상유지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 사람들이 실제 브렉시트에 찬성 또는 반대하는 투표를 했는가는 더 많은 요인들(예를 들어, 캠페인 효과 등)에 대한 분석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이 연구는 아직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실험대상과 방법 등에서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다. 대상이 교육수준이 높은 20대에 한정된 점과 온라인 실험이 가지는 표본상의 한계 (저소득층과 노년층 미포함) 등이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통계학자인 겔먼(Andrew Gelman)이 많은 실험연구에 대해 비판했던 것처럼, 실험 세팅의 조작 상의 미세한 변화에 따라서 “끝없이 갈라지는 두 개의 길이 있는 정원”(겔먼이 사용한 보르헤스의 표현)처럼 다양하게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텍스트 분석기법을 활용하여 인간의 감정적인 요인이 정치적 태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는 점에 이러한 연구의 기여가 있다. 또한 서베이 실험과 텍스트 분석을 활용하였다는 점에서 방법론적으로도 흥미로운 시도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이러한 방향의 연구는 이전에는 사회과학에서 부차적으로 여겨졌던 인간의 일상적인 감정이 정책에 대한 태도 또는 투표 등의 정치적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가능성을 보여준다. 향후 이러한 연구는 비단 텍스트 분석 만이 아니라, 표정 분석, 이미지 분석 등의 적용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예컨대, 불안이나 공포에 대한 개인별 민감도의 차이가 다양한 통일 정책이나 북한에 대한 태도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흥미로운 분석일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Aarøoe, Lene, Michael Petersen, and Kevin Arceneaux. 2017. “The Behavioral Immine Systems Shapes Political Intuitions: Why and How Individual Differences in Disgust Sensivitty Underlie Opposition to Immigration.”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111(2): 277-294.

Fredén, Annika. 2020. “Politlical Science: Movint from Numbers to Words in the Case of Brexit.” Sverker Sikström and Danilo Garcia, eds. 2020. Statistical Semantics: Methods and Applications. New York: Springer.

McAuliffe, Kathleen. 2019. “Liberals and Conservatives React Differently to Repulsive Pictures.“ The Atlantic (March 20).

● Issue Brief는 집필자의 견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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