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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0호] 권지민 전문연구원 - 한반도 평화 체제의 패러다임 전환: ‘적대적 두 국가담론의 극복과 ‘평화적 두 국가 관계’의 제도화

  • 4월 13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일 전


제180호


권 지 민

(육군3사관학교 정치외교학과장)



한반도 평화 체제의 패러다임 전환 : '적대적 두 국가담론'의 극복과

'평화적 두 국가 관계'의 제도화


1945년 분단 이후 70여 년간 남북 관계의 기저를 형성해 온 ‘민족 공동체’라는 거대 담론은 이제 그 역사적 수명을 다하고 근본적인 해체와 대전환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북한이 2023년 말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공식화한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선언은 단순한 대남 압박용 전술이나 일시적인 수사가 아니다. 이는 김정은 정권 들어 치밀하게 전개되어 온 ‘우리 국가 제일주의’ 노선의 사상적 완결판이며, 남북 관계를 민족 내부의 특수 관계가 아닌 ‘교전 중인 적대국 관계’로 재규정함으로써 향후 대남 무력 도발과 핵·미사일 고도화의 법적, 제도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기획이다. 북한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 민족과 통일을 상징하는 모든 기구와 물리적 상징물을 파괴하는 일련의 행위는, 체제의 핵심 정체성이 이미 ‘민족’에서 ‘국가성(Statehood)’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되었음을 확증한다.

이러한 극단적인 담론 전환의 이면에는 복합적인 대내외적 구조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미·중 패권 경쟁의 심화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고착화된 ‘신냉전’ 구도가 북한에게 독자적인 주권 국가로서 국제 무대에 나설 수 있는 외교적 공간을 열어주었다. 특히 북·러 간의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격상 등 군사·경제적 밀착은, 북한 지도부로 하여금 남한과의 민족적 유대감이나 서방의 제재 완화 없이도 체제 생존이 가능하다는 전략적 오판과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대내적으로는 K-컬처로 대변되는 남한의 연성 권력(Soft Power) 유입과 압도적인 경제력 격차가 체제 유지의 가장 큰 위협으로 부상함에 따라, ‘민족 동질성’을 철저히 차단하고 물리적, 심리적 방벽을 높여야만 내부 결속을 도모할 수 있다는 극도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남한 사회 역시 전후 세대로의 교체와 함께 중대한 정체성의 변화를 겪고 있다. 과거 세대가 품었던 ‘당위적이고 감성적인 통일’에 대한 열망은 현실적인 생존, 번영, 그리고 인권의 문제로 대체되었다. 특히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북한을 우리와는 별개의, 때로는 위협적인 타국으로 인식하는 ‘시민적 민족주의’와 ‘국가 중심적 안보관’이 빠르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남북 양측 모두에서 민족이라는 연결고리가 형해화되는 현시점에, 만약 우리가 북한의 ‘적대적 타자화’ 전략에 피동적으로 끌려가거나 과거의 통일 방안만을 기계적으로 반복한다면, 한반도는 북한이 쳐놓은 상시적인 군사적 충돌 위협과 소모적인 안보 딜레마의 늪에 영구히 갇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구조적 안보 위기를 타개하고 한반도의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도발적인 ‘적대적 두 국가’ 담론을 능동적으로 해체하고 이를 ‘평화적 두 국가 관계’로 전환하여 안착시키는 '평화의 제도화' 작업이 절실히 요구된다.

‘평화적 두 국가 관계’로의 이행은 한반도의 향후 발전과 평화 정착을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생존 패러다임이다. 첫째, 안보의 제도화를 통해 예측 불가능한 위협을 통제 가능한 평화로 구조화할 수 있다. 남북이 서로를 헌법상 미수복 영토나 통일의 대상으로 묶어두는 규범적 모호성에서 벗어나, 유엔 헌장에 기반한 상호 주권 존중과 영토 보전의 원칙을 적용하는 명확한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상대를 재규정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군사적 신뢰 구축과 위기 관리 메커니즘을 촘촘하게 제도화할 때, 오판에 의한 우발적 무력 충돌을 예방하고 북한의 국지적 도발 명분을 국제법적으로 철저히 차단할 수 있다.

둘째, 국가 자원의 효율적 재분배와 지정학적 대도약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맹목적인 적대 관계 유지와 이념적 대립으로 인해 수십 년간 낭비되어 온 막대한 분단 비용과 유형·무형의 국가 에너지를 미래지향적인 첨단 산업과 삶의 질 향상으로 전환해야 한다. 상호 실체를 인정하는 평화적 공존 체제가 뿌리내린다면, 지정학적 리스크가 해소됨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잇는 가교로서 대한민국이 동북아시아의 평화 촉진자이자 경제 네트워크의 허브로 도약할 수 있는 거대한 전략적 공간이 열리게 된다.

셋째, 변화하는 안보 환경 속에서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정예 장교 및 호국 간성들을 위한 '지속 가능한 국방·안보 역량'을 기르는 핵심 토대가 된다. 과거의 이념적 대적관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국제 정치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주권 국가 간의 갈등을 어떻게 억제하고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고도화된 전략적 사고가 필수적이다. 압도적이고 튼튼한 한미 연합 방위 태세와 독자적인 군사적 억제력을 굳건히 유지하는 가운데, 외교를 통한 위기 관리 능력을 동시에 함양하는 '균형 잡힌 안보관'을 청년 세대에게 교육해야 한다.

'평화적 두 국가 관계'로의 패러다임 전환과 그 제도적 안착은 결단코 헌법적 가치인 평화 통일에 대한 포기나 굴종이 아니다. 오히려 북한이 의도한 파국적인 적대 관계의 함정을 주도적으로 돌파하고, 굳건한 안보를 바탕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구조로 재편하기 위한 가장 능동적이고 지혜로운 국가 생존 전략이다.


 

 #키워드: 한반도 평화 체재, 패러다임 전환, 적대적 두 국가 담론, 평화적 두 국가 관계, 국가 생존 전략,Peace Regime on the Korean Peninsula, Paradigm Shift, "Two Hostile States" Discourse, Peaceful Two-State Relationship, National Survival Strategy

● Issue Brief는 집필자의 견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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