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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칼럼] 송경호 전문연구원 - 가장 외로운 시대의 인공지능

벌써 몇년 된 일이다. 일본에서 고장난 로봇 강아지 아이보(aibo)를 위한 합동 장례식이 열렸다. 대화형 로봇 팔로(Palro)가 추도사를 하고, 스님이 경전을 암송했다. 고령화와 저출생, 관계의 단절로 인해, 일본 사람들이 점차 사회로부터 고립됐고, 아이보를 친구나 가족처럼 여기는 대안적 관계가 만들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 로봇 스님도 등장했다. 개발업체는 이 로봇이 유골함을 제단에 올리고 불경을 외는 등 기본적인 장례 진행이 가능하며, 무엇보다 인간 스님에 비해 저렴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혼자 살던 생활보호대상자 노인이 사망했을 경우에도 저렴한 로봇 스님이 그의 마지막을 배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화형 AI는 초기부터 의인화된 형태로 상품화됐다. 최근 메타(Meta)는 특정한 스타일로 답변을 생성하는 페르소나 챗봇을 도입했다. 우리나라에는 20세 여대생을 페르소나로 구축된 ‘이루다’가 있다. 2022년 재출시된 이루다 2.0은 출시 41일 만에 누적 다운로드 100만회를 기록했다.


가장 최근에는 ‘AI 가상인간’과의 결혼 소식도 있었다. 자신의 취향을 반영해 만든 가상인간 남편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콤플렉스가 없고, 그의 가족이나 아이, 친구를 상대할 필요도 없다는 이유였다. 이에 따라, 가상인간 서비스가 사람들의 외로움을 보듬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돕는다는 분석도 나왔다.


인간 스님이 로봇 강아지의 장례를 치르고, 로봇 스님이 인간의 명복을 빌며, 인간이 AI와 대화를 나누고 사랑에 빠지는 세상이다. 인간이 있던 자리를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대신하는 것이 더는 놀랍거나 어색하지 않다. 정치철학자 김만권 교수(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는 최근 출간한 <외로움의 습격>에서 이러한 현상의 근간에 ‘외로움’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외로운 젊은 세대에게 의인화된 AI 서비스가 친구를 자처하며 찾아왔다고 지적한다. 가장 외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외로운 세대에게 AI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친구가 생기는 건 좋은 일 아닐까? 김만권에 따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인용하며, 외로움에 맞서는 행위로 공론장에서 벌이는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사람들이 공론의 장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 반해, AI 챗봇과 같은 디지털 기술은 외로운 사람들이 사적 영역에 홀로 갇혀 있으면서도 실제 인간과 소통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김만권에 따르면, 이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차단하여 기계와의 관계 맺기에 만족하게 만들거나, ‘인간과 기계의 관계 맺기’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 맺기’를 왜곡시킬 가능성도 있다.


로봇 강아지의 장례식과 로봇 스님이 등장한 2018년, 영국에서는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이 탄생했다. 일본 정부 역시 영국을 벤치마킹해 2021년 ‘고독·고립대책담당실’을 설치했다. 올해 미국 정부는 ‘외로움과 고립감이라는 유행병’ 보고서를 통해 외로움을 비만이나 약물중독 같은 심각한 공중보건 문제로 다뤄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에는 ‘디지털 능력주의’가 팽배하다. “성공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부정하고, 뒤처졌다는 이유만으로 타자를 혐오하는 사람들로 가득찬 곳”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이불 밖은 위험하다. 그나마 안전한 집에 숨어서 로봇이나 AI와 대화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발견한 ‘각자도생’의 한 방법이다.


정부는 최근 국내 19~34세 청년 중 이렇게 고립·은둔하고 있는 사람이 54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세계에서 가장 외로운 국가이지만, 이 외로움에 대해 가장 무심한 국가라는 그의 지적은 뼈아프다. 가장 외로운 시대 가장 외로운 세대에게 인공지능의 등장은 이처럼 비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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