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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칼럼] 송경호 전문연구원 - 적대주의를 넘어 서로 함께 살아가기


우리 집에는 매일 전투가 벌어진다. 히어로와 악당, 로봇과 괴물, 해적과 해군이 온 집 안을 파괴한다. 아들만 둘인 집이라 어쩔 수 없다. 오늘도 편을 나눠 놀다가 한쪽이 울고, 둘 다 혼나는 엔딩이 반복되고 있다. 첫째가 특히 편 가르기를 잘한다. 민초파와 반민초파, 부먹파와 찍먹파뿐만 아니라, 아이폰과 갤럭시, 남자와 여자, 한국(인)과 외국(인)에 이르기까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에 편을 가른다. 물어보니 편 가르기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해되는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짜뉴스나 헛소리다. 가급적 하나하나 바로잡아 보려 노력하지만, 귀찮을 땐 그냥 혼내고 넘어가기도 한다. 편 가르고 노는 건 좋지만, 상대방을 깎아내리기보다 우리 편을 칭찬하는 방식으로 하자고 말이다.


문득 우리 아이들의 이런 모습이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의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적대’는 일상이다. 그 작동원리인 반지성주의 역시 뿌리가 깊다. 서로를 반지성주의라고 손가락질하며, 도덕적으로 훈계하고 비난하며 적대하는 것에 익숙한 상황인 셈이다.


얼마 전 개최된 ‘한국정치와 적대주의: 이해와 해법의 모색’이란 논제의 토론회는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자리였다. 한상원 충북대 철학과 교수는 ‘위기의 한국 민주주의: 탈진실 정치와 민주적 집단지성’이란 제목의 발표에서 “민주주의에 본질적”인 지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지성’은 “심층적으로 비판하고 판단하고 숙고할 수 있는 자세”이며, “특정한 엘리트 집단이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를 이루는 모든 사람들이 가져야 하고 가질 수 있는 태도”를 말한다. 이는 공동체를 공동체로 만들 수 있는 정서적 결속력, 곧 “공동체의 감각”을 필요로 한다. 한상원은 이러한 지성·태도·감각을 가짐으로써 우리가 적대의 원인이 되는 구조적 본질을 깨닫고 ‘허위적 적대’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지성과 태도, 감각을 가질 수 있을까? 이어진 김현 박사(연세대 정치학과 BK21)의 발표 ‘어떻게 적대주의를 완화할 수 있는가: 적대주의 정치와 민주시민교육’에서 이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는 우선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윤리적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통적으로 리터러시 교육에서는 가짜뉴스에 대응하기 위해 미디어 텍스트를 해체해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자신의 메시지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이뿐만 아니라 정보를 윤리적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는 능력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교육을 통해 ‘공통감각과 정서’를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모델을 수정·보완한 토론식 수업을 제시한다. 구체적으로 그는 첫 번째로 이해관계를 둘러싼 찬반식 토론을 진행하되, 이해관계의 의미를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부분적인 이해관계를 넘어서고 이것을 포괄하는 정치적 결사체에 대한 공동책임’이라는 정치적 결사체의 시각에서 재해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두 번째로 학생들이 토론 과정에서 서로의 정서를 드러내고, 서로 다른 정서 속에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도록 단계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민주적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공통감각과 정서를 육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두 발표 내용을 종합하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적대주의와 반지성주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감각,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태도, 민주적 지성이 필요하며,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이를 함양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어딜 가르치려 들어!’라며 서로 밀어내는 세상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서로 함께 살아가는 법은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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