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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호] 송경호 전문연구원 - 대통령 연설문에 나타난 ‘북한동포’ 인식의 변화



제161호


송 경 호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대통령 연설문에 나타난 ‘북한동포’ 인식의 변화


과거 우리 사회에서 북한사람들은 ‘동포(同胞)’로 표현됐다. 38도선 이북 지역에 거주하는 한 민족을 지칭하는 가장 일반적인 표현이 바로 ‘이북동포,’ ‘북녘동포,’ ‘북한동포’였던 것이다. 지금은 ‘북한주민’이라는 표현도 사용된다. 그리고 이 연장선상에서, 북한에서 탈출한 북한사람들을 ‘북한이탈주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북한사람들을 지칭하는 두 개의 표현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동포’와 ‘주민’이라는 표현의 차이가 곧 북한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 차이 혹은 변화를 반영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대표적으로 김범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1948년 분단 이후 북한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로는 ‘이북 동포,’ ‘북한 동포,’ ‘북한 주민’ 등의 용어가 사용되어 왔다. 이 가운데 ‘이북 동포’와 ‘북한 동포’는 북한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우리와 같은 민족의 구성원’으로 간주하는, 즉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의 민족적 동질성을 전제하는 용어인 반면 ‘북한 주민’은 북한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입장에서 지칭 하는 용어이다.”

동포가 문자 그대로 “한 배에서 태어난” 사람을 지칭하며, 우리 사회의 맥락에서 혈연적·종족적 민족 구성원을 지칭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김범수의 이러한 지적은 충분히 납득가능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사람들을 동포라고 지칭하는 것과 주민으로 지칭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인식적 차이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굳이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일상적 언어 감각에서 동포는 가족과 같은 따뜻함이 느껴지는 말인 것과 달리, 주민은 그에 비해서는 차갑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동포라는 호명 방식이 반드시 북한사람들에 대한 특별히 따뜻한 시각이나 입장을 전제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호명 방식과 실제 인식 사이의 관계에는 최소한 세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호명 방식과 실제 인식이 일치하는 경우, 실제 인식을 가리기 위해 특정한 호명 방식을 활용하는 경우, 혹은 야나부 아키라(柳父章)가 말한 ‘카세트 효과’처럼 별 생각 없이 유행에 따라 그 표현을 그냥 사용한 경우가 그것이다.

이는 결국 호명 방식만큼이나 호명의 맥락과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북한동포라는 표현에 실제 어떤 의미 혹은 인식이 내재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북한사람들을 동포로 부를 때 어떤 맥락과 내용을 담아내고 있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북한동포의 의미 변화를 입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북한동포라는 표현이 사용된 광범위한 자료에 대한 분석을 통해, 사회 일반의 용례와 인식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른 기초 작업의 일환으로 1대에서 18대 대통령 연설문에서 ‘이북동포’, ‘북한동포’, ‘북녘동포’ 등으로 표현되는 북한동포 개념을 중심으로, 유관어와의 관계 및 유관어의 변화를 살펴보고자 했다.

그 결과, 역대 대통령 연설문에 나타난 북한동포에는 공통되게 혈연적·종족적 인식뿐만 아니라 시민적 인식이 착종되어 있었지만, 시기별로 다른 양상이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50-1960년대에는 북한동포를 구성원으로 하는 민족공동체의 본질이 자유와 민주주의, 또는 이를 구현한 조국 대한민국과 결부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시민적 인식이 상대적으로 부각되었다. 1970년-1980년대에는 북한동포를 종족적 민족의 일원이자 쇠퇴하는 민족정신을 함께 지켜가야 하는 주체로 새롭게 규정함으로써, 민족공동체 회복에 앞장서야 하는 동반자로 인식했다.

마지막으로, 1990년대 이후 북한동포는 보수정권과 진보정권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었다. 보수정권에서 북한동포는 자유를 잃은 민족의 일원으로 간주되었다. 이는 1950-1960년대로의 회귀로 볼 수 있지만, 더 이상 북한동포를 해방과 구출의 대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분적 회귀였다. 한편, 진보정권은 기본적으로 1970-1970년대를 계승했지만, 앞선 시기에 나타난 이념적·시민적 성격을 배제하고 종족적 성격에 초점을 맞춰 북한동포를 규정했다.

이처럼 보수정권과 진보정권은 북한동포라는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대조적인 인식을 투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1990년대 이후 모든 정권에서 북한동포가 더 이상 동포 혹은 이 개념을 중심으로 한 민족관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지 못한다는 점 즉, 북한동포가 우리가 동포라고 인식하는 범주에서 주변화되는 경향 역시 발견된다. 이는 북한동포라는 표현이 주로 연설의 서두에서 의례적으로 재외동포나 해외동포와 함께 호명될 뿐이라는 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북한동포의 위상 하락은 20세기 이후 한국 민족주의 변화라는 거시적 흐름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20세기 이후 한국에서 종족적 성격의 민족주의가 약화되고 시민적 성격을 강조한 새로운 민족주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북한동포 개념이 기본적으로 종족적 성격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한동포의 위상 하락은 북한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 변화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민적 민족주의가 부상함에 따라 전통적인 종족적 민족주의가 쇠퇴함으로써 발생한 하나의 현상으로 간주될 수 있다.




● Issue Brief는 집필자의 견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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