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5호
봉영식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2024년 한반도 전쟁위험설이 과장인 이유
최근 2024년 초반에 북한이 대규모 군사행동에 나설 것이며, 한반도에서 심각한 무력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1월초 북한이 서북 도서 북방 일대에서 포격 도발을 세 차례 감행하면서 한반도 군사 긴장이 높아졌다. 이후 1월 10일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이 “대한민국 족속들은 우리의 주적”, “대한민국을 완전히 초토화해 버릴 것”, “전쟁을 피할 생각은 전혀 없다” 등 초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김 위원장은 또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 설에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과 같은 표현을 북한의 헌법에서 삭제하고 한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간주한다고 천명하였고, “불신과 대결만을 거듭해온 쓰라린 북 남관계사를 냉철히 분석한 데 입각”했다며 ‘통일 폐기’ 방침을 북한 헌법에 명기하기로 결정 하고 정부 내의 통일 관련 각종 부서·업무를 폐지하는 등 이전과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따라 북한이 과거와 달리 이제 실제 전쟁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의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시그프리드 헤커 교수는 최근 북한 전문매 체 38노스 기고문에서 “한반도 상황이 1950년 6월 초반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더 위험하다”며 "1950년에 할아버지(김일성)가 그랬듯이 (김정은도) 전쟁을 하겠다는 전략적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칼린과 헤커는 지금의 위험이 한미일이 늘 경고하는 도발 수준을 넘어섰으며, 작년 초부터 북한 관영매체에 등장하는 ‘전쟁 준비’ 메시지가 북한이 통상적으로 하는 허세가 아 니라고 주장했다.1) 비슷한 맥락에서 존 파이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1월 25일 아시아 소사이어티 주최 포럼에서 "북한이 매우 부정적인 행보를 지속해서 이어가고 있다"고 지적 했다.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지낸 대니얼 러셀 아시아 소사이어티 부회장도 이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0년 연평도 포격을 넘어서는 공격을 할 의도가 있는 것 같아 보인다고 지적하면서 "김정은이 충격적인 물리적 행동을 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2)
그렇다면 과연 북한이 2024년 전반부에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정도의 대규모 군사 행동을 감행할 확률은 얼마나 될 것인가? 북한의 최근 행보와 내부 사정, 그리고 한반도 관련 정세를 고려할 때, 북한이 본격적인 군사행동을 시도할 확률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안보수석을 역임한 천영우 대사가 지적하듯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과 북한 정권의 담화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전쟁 위협 발언은 모두 전제가 있는 조건문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예를 들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은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등 무력 적화통일을 적극적으로 추구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으나, 이는 한미 양국의 “북침 도발 책동”으로 전쟁 이 발발할 경우를 전제로 한 것이다. 북한은 1월 28일 동해상으로 순항미사일을 여러 발 발사하면서, 이번 발사가 지난 15-26일 한미가 실시한 사이버동맹훈련에 대한 항의라는 점을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은 논평에서 “싸이버공조체계의 강화라는 명목 밑에 처음으로 벌어진 이번 훈련은 명백히 싸이버 전쟁 숙달에 목적을 둔 것으로서 그 누구의 《정권종말》을 공공연히 떠벌이며 무분 별한 군사적 망동을 일삼고 있는 미국과 그 추종 세력들의 전쟁 도발 책동의 연장”이라고 주장했 다. 이어 "우리는 우리가 보유한 최첨단무장장비들이 결코 《과시》용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기회를 통해 증명해 보였을 뿐더러 핵무력의 사용과 관련한 우리식의 핵교리를 법화한지 오래”라며 “미국과 괴뢰 대한민국 족속들에게 다시 한 번 경고하건대 만약 전쟁의 도화선에 불꽃이 이는 경우 우리의 무자비한 정벌의 목표로 될 것”이라고 역시 조건문 형식의 경고를 되풀이 하였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북한이 2022년 9월8일 채택한 ‘핵무력정책법’이다. 북한에 대한 비핵 공격에 대해서도 핵을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 이 법령의 채택을 두고 북한의 ‘선제 핵 공격’ 교리가 명문화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핵무력정책법은 비록 자의적이고 공격적이기는 하지만, 전술핵 사용을 ‘핵무기 사용 5가지 조건’의 경우에 한정하고 있다. ‘핵무기 또는 기타 대량살육무기 공격이 감행됐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라는 조건은 사실상 핵무기 선제공격 독트린이라기보다는, 정권 종말 위기가 명확해졌을 때 북한정권은 공멸 수단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으니, 북한 정권 붕괴를 위협하는 행동을 자제하라는 방어적 경고 차원의 독트린의 성격이 강하다.3)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통일 폐기 방침 선언도 방어적 차원의 선택의 성격이 강하다. 김정은 정권은 남북한 간 체제의 차이와 역량 격차가 극명한 속에서 장기적으로 ‘백두혈통 정권’의 지속을 위해 이 길을 택했을 것이다. 이미 2022년 8월 19일 담화문에서 김여정 부부장은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는 흥미로운 언급을 하였다. 안보 위기와 경제위기가 심각한 북한 정권이 평양문화어보호법 등과 같은 자본주의 요소의 침투와 '남풍'의 영향을 막기 위한 정책을 강화하는 현상은 북한 정권이 한반도 점령이라는 거대한 전략목표를 추진 하고 있다기 보다는 풍요롭고 매력적인 남쪽으로 쏠리는 민심과 정통성 위기를 어떻게 해서라도 극복해 보려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북한이 과연 전쟁 불사를 운운하는 경고를 실제 행동으로 옮길 능력을 현재 갖추고 있느냐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의 빈번한 신형무기 시험은 역설적으로 이러한 신형무기들이 아직 본격적으로 생산, 배치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전 북한 외교관이자 현 국회의원인 태영호 의원의 지적대로, 지난해 9월 푸틴-김정은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대러 무기 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과연 북한군이 전면적인 대남 군사도발을 감행하고 그 사후를 군사적으로 대응하는 데 필요한 탄약, 포탄 및 기타 무기와 물자를 충분히 확보하였는지 불투명하다.4) 1월 25일 블룸버그통신은 올해 북한 경제가 중국과 러시아와의 밀착으로 2016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 0.5%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이는 북한이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에 대해 155mm 포탄과 탄도 미사일 등 무기를 대거 판매하고 중국과의 국경무역도 본 격적으로 재개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5) 이러한 경기회복 시기에 과연 북한이 대러 무기 수출을 중단하고 그 무기를 내수로 돌려 대남도발에 전면적으로 나설 것인지 그리고 그러한 행동을 러시아와 중국이 한국전쟁 당시처럼 전폭적으로 지지할 것인지 의심스럽다.
오는 4월 국회의원 선거에 각종 도발을 통하여 윤석열 정권 퇴진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메세지는 북한 정권이 이미 여러 차례 대남 담화문을 통하여 밝힌 바 있다. 따라서 2024년 초반 북한은 각종 대남 도발과 위협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그러한 도발 행위는 한반도전쟁위기설에서 이야기하는 정도의 전면적이고 심각한 군사행동과는 차원이 다른 저강도 도발 행위일 것이 다. 북한의 언사의 진위와 맥락, 그리고 북한이 위협과 엄포를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 능력과 이익이 과연 얼마나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할 것이다.
1) Robert L. Carlin and Siegfried S. Hecker, "Is Kim Jong Un Preparing for War?" 38 North. January 11, 2024.
2) 美당국자들 "北, 매우 부정적 행보 지속...치명적 군사행동 가능성" 연합뉴스. 2024년1월26일.
3) 천영우, "서독은 끝까지 동독의 2국가 체제 요구를 거부했다." 조선일보, 2024년1월 24일.
4) "태영호 “러에 무기 팔며 전쟁한다고? 김정은 허세, 불안해할 필요 없다” 조선일보. 2024년 1월18일.
5) 지난10월 이후 북한은200만발 이상의 포탄과 탄도 미사일을 나진항 등을 통해 러시아에 수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북한, 올해 0.5% 성장 전망...중·러 밀착 효과," 헤럴드경제, 2024년1월26일.
● Issue Brief 는 집필자의 견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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