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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9호] 이병재 전문연구원 - 통일 한국의 장기적 정체성 통합을 위한 동적 정책 설계: 독일 통일 35년이 주는 교훈과 한반도 적용 가능성


제179호


이 병 재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통일 한국의 장기적 정체성 통합을 위한 동적 정책 설계:

독일 통일 35년이 주는 교훈과 한반도 적용 가능성

     

      

I. 독일 통일 35년의 교훈: 제도보다 오래 남는 정체성의 시간

1990년 독일 통일은 냉전 종식의 상징이자 분단국 통일의 성공 사례로 평가받아 왔지만, 통일 이후 35년이 지난 지금도 동서독 주민들이 보여주는 인식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특히 2022년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동서독 주민들 사이에 존재하는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차이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2025년 11월 뉴욕타임스는 이러한 지속적인 분열을 조명하며, 독일 통일이 제도적 통합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외교 정책 선호와 정체성 통합이라는 측면에서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음을 보여주었다(Schuetze 2025).

여론조사 데이터는 이러한 분열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2025년 2월 독일 공영방송 ZDF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서독 지역에서는 70%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지지한 반면, 동독 지역에서는 53%만이 지지했다(Forschungsgruppe Wahlen 2025). 영토 양보 문제에서도 유사한 격차가 나타난다. 2024년 11월 Körber 재단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동독 지역 주민의 52%가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양보해야 한다고 응답한 반면, 서독 지역에서는 40%만이 이에 동의했다(Körber-Stiftung & Verian Institute 2024).

이러한 차이는 분단 시기 동안 축적된 정치사회화 경험, 통일 이후에도 지속된 경제적 격차와 상대적 박탈감, 그리고 과거 소련/러시아에 대한 정서적 유대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동독 주민들의 친러시아 정서는 45년간의 소련 영향권 하에서 형성된 정치·경제·문화적 유대와 교류 경험에 기반한다. 특히 독일 통일 당시 동독에 주둔하던 약 34만 명의 소련군이 1994년까지 큰 충돌 없이 철수한 것은, 일부 동독 주민들에게 소련/러시아가 독일 통일을 수용하고 협력했다는 긍정적 기억으로 남아 있다(Schuetze 2025).

2024년 9월 구 동독 지역인 작센주와 튀링겐주의 지방선거는 이러한 인식 차이가 정치적으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작센주에서는 유권자의 70% 이상이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에 비판적인 정당들에 투표했으며, 집권 연정 정당들의 합산 득표율은 12.5%에 불과했다(Fassnacht 2024).

결국, 통일의 ‘정치·제도적 사건’은 비교적 빠르게 진행될 수 있지만, 주민들의 정체성과 외교·안보 인식은 세대에 걸쳐 형성되고 변화하는 장기적 속성을 가진다. 독일의 사례는 정체성 통합이 제도 통합보다 훨씬 오랜 시간과 훨씬 복잡한 접근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II. 한반도 통일의 구조적 도전: 더 깊고 더 오래 형성된 정체성의 괴리

독일과 비교했을 때 한반도는 훨씬 더 깊은 분단의 시간을 겪어 왔다. 독일의 분단이 45년(1945~1990)이었던 반면, 한반도의 분단은 2025년 현재 80년에 이르며, 북한의 독자적 체제 수립(1948년) 이후로는 77년이 지났다. 이러한 장기 분단은 3~4세대에 걸쳐 북한 주민들의 사고방식과 외교 인식을 고착화해 왔으며, 이 정체성은 통일 이후에도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통일 한국이 직면할 가장 큰 도전은 외교·안보적 선호의 구조적 격차이다.

첫째, 외교·안보 정책에서의 지역적 격차가 심화될 수 있다. 구 북한 지역 주민들은 한미동맹 강화나 대중국 견제 정책, 추가적인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대만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 등에 대해 상대적으로 비판적이거나 회의적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러한 태도는 국가 정체성과 직결될 수 있다. 독일에서 동서독 간 우크라이나 전쟁 인식 차이가 연방정부의 외교 정책 수립에 상당한 국내 정치적 제약을 가하고 있는 것처럼, 통일 한국도 유사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둘째, 외부 세력의 내부 분열 이용 가능성이 높다. 중국과 러시아는 구 북한 지역에 경제 투자, 문화 교류, “공유된 역사”와 “항일 투쟁의 동지”라는 내러티브 강조, “남한의 경제적 식민화”와 “미국 추종”에 대한 비판적 담론 형성 등을 결합한 영향력 확대 전략을 펼칠 수 있으며, 이는 통일 한국 내부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셋째, 경제 통합 실패가 정체성 분열을 심화시킬 수 있다. 독일 경험에서 핵심적인 발견은 경제 통합이 실패하거나 불공정하다고 인식될 경우, 주민들이 과거 체제에 대한 향수나 외부 세력(러시아)에 대한 친화적 태도를 유지하거나 오히려 강화한다는 점이다. 이는 독일 동부 지역에서 친러시아 정서가 장기간 지속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주요 요인이며, 통일 한국에서도 구 북한 주민들이 중국·러시아에 대해 유사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

결국 한반도 통일은 독일보다 더 깊고 더 오래된 정체성의 균열을 다루어야 하며, 이는 통합 정책 설계에 있어 훨씬 높은 수준의 정교함과 적응성을 요구한다.

 

III. 현실적 고려사항과 동적 정책 설계의 필요성

이처럼 통일 이후의 정체성 통합이 장기간에 걸친 복잡한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남북 관계는 극도로 경색되어 있어 전환기 정의나 장기적 통합 정책을 논의하는 것이 실효성이 없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지금 같은 시기에 전환기 정의나 정체성 통합을 논의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그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전환기 정의와 통합 정책을 ‘즉각적 실행 과제’로만 이해한 데서 비롯된다.

첫째, 통일은 예측 불가능하며 사전 준비가 필수적이다. 통일은 예측 가능하게 찾아오지 않으며, 급변 상황은 대체로 준비되지 않은 순간에 발생한다. 통일 직후 정책 수립을 위한 시간이 극도로 제한될 것을 고려하면,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사전 준비, 즉 방법론적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다.

둘째, 경색기는 장기적 설계도를 마련할 기회이다. 남북 관계의 경색기일수록 오히려 장기적 설계도와 데이터 기반 분석 체계를 마련해야 하며, 이는 규범적 이상이 아닌 불확실성이 큰 환경에서 정책의 방향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대응 능력의 구축이다.

셋째, 동적 정책 설계는 다양한 시나리오에 적용 가능하다. 동적 정책 설계는 단순히 ‘체제 전환 후’ 시나리오뿐 아니라, 부분적 개방, 점진적 변화, 제한적 인도주의 접촉 등 다양한 중간 경로에도 적용 가능하다.

결국 이 연구는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를 위한 투자이자 “현재 가능한 학술적 진전”이며, 정치적 교착 상태는 오히려 이론적 정교화와 방법론적 혁신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IV. 동적 정책 설계와 데이터 기반 접근: 정체성 통합의 장기 관리 전략

정체성 통합은 선형적인 과정이 아니라 다양한 변수가 결합해 비예측적으로 변화하는 장기적 과정이다. 따라서 여러 세대를 거쳐 나타나는 변화에 맞추어 정책을 지속적으로 보정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며, 동적 정책 설계(Dynamic Policy Design)는 바로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 접근이다.

동적 정책 설계는 원래 의학 및 역학 분야에서 개발된 동적 치료 체계(Dynamic Treatment Regimes, DTR)의 원리를 정책 영역에 적용한 것이다(Murphy 2003). DTR은 순차적 개입의 체계로, 각 단계의 정책 결정이 이전 개입 결과와 중간 단계에서 관찰된 사회적 맥락에 기반하여 조정된다. 이는 통일 후 특정 지역에 정책을 투입했을 때 관찰된 중간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에서 순차적으로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체계이다.

최근의 빅데이터, 인과추론 및 머신러닝 기법의 발전은 동적 정책 설계를 실행 가능한 정책 도구로 만들어주고 있다. 2025년 발표된 체계적 문헌 검토에 따르면,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을 활용한 DTR 연구는 2020년 이후 급격히 증가했으며, 내분비학, 중환자 치료, 종양학, 정신건강 및 중독치료 등 다양한 임상 분야에서 동적이고 개인화된 치료 계획 수립에 활용되고 있다(Frommeyer 2025). 전환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 분야의 최근 연구들도 이러한 접근의 정책적 적용 가능성을 보여준다.

첫째, 시계열 분석과 맥락적 효과 추정이다. 콜롬비아의 진실·화해 위원회에 관한 연구에서는 지역별·시간별 정책 효과를 시계열·다층 혼합효과 모델로 분석하여, 초기 진실 규명 활동 이후 배상·회복 프로그램이 지역 공동체에 미치는 효과의 차이와 상호보완적 관계를 검증한 바 있다(Bakiner 2014). 이러한 방법론은 동적 정책 설계의 핵심 원리—중간 결과에 따른 정책 조정—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둘째, 네트워크 분석 및 공간·시간 동적 분석이다. 에티오피아의 전환기 정의 연구에서는 네트워크 분석과 구조방정식 모형이 활용되어, 재판, 사면, 기억 사업 각각이 시간과 맥락에 따라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정량적으로 추정되었다(Lamont and Boanada-Fuchs 2021). 콩고민주공화국(DRC) 사례에서는 GIS와 머신러닝 기반 공간·시간 동적 분석이 결합되어, 지리적·사회적 정체성 변수와 정책 효과 패턴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정책 재설계에 실질적으로 활용된 바 있다(Vinck and Pham 2021).

셋째, 강화학습을 통한 정책 최적화이다. 강화학습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정책의 가치를 학습하고, 장기적 보상을 최대화하는 최적 정책을 선택한다. 이는 단순한 정책 모사·반복이 아닌 ‘실시간 학습’과 ‘상황별 맞춤 정책’ 수립을 가능하게 하며, 특히 불확실성이 큰 환경에서 정책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유용하다. Deliu 등(2024)의 연구는 강화학습을 활용한 적응적 개입(Adaptive Interventions) 구축에 대한 최초의 통합적 기술 검토를 제공하며, 이러한 방법론이 정책 영역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Deliu 2024).

결국 이러한 데이터 기반 접근과 동적 정책 설계는 통일 이후 수십 년 동안 진행될 정체성 통합 과정을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며, 이는 통일 한국이 정체성의 균열을 완화하고 장기적으로 통합된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전략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V. 결론: 불확실성 시대, 방법론적 준비는 가장 현실적인 투자

독일 통일 35년의 교훈은 명확하다. 정치적·제도적 통합은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달성될 수 있지만,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정체성 기반의 선호는 세대를 거쳐 지속되며, 특히 경제 통합이 실망스럽거나 불공정하게 인식될 경우 더욱 그러하다.

한반도는 더 긴 분단(80년 vs 45년), 더 깊은 이념적 괴리, 더 복잡한 지역 지정학 환경이라는 점에서 독일보다 어려운 조건에 직면해 있다. 동서독 간 우크라이나 전쟁 인식 차이는 단순히 흥미로운 현상이 아니라, 한반도 통일 후 직면할 구조적 도전을 예고하는 조기 경보 신호로 읽혀야 할 것이다.

동적 정책 설계는 통일 한국이 2~3세대에 걸쳐 관리해야 할 외교·안보 정체성 균열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론적 틀을 제공한다. 이는 통일 초기에 수립된 정책이 수십 년간 유효할 것이라는 비현실적 가정을 버리고, 중간 결과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며 정책을 조정하는 적응적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현재 남북 관계의 경색 국면에서 이러한 논의가 시기상조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통일은 예측 가능하게 찾아오지 않으며, 급변 상황은 대체로 준비되지 않은 순간에 발생한다. 오히려 경색기야말로 장기적 설계와 방법론적 준비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이다. 지금부터의 준비가 미래 전환기 정의의 효과성을 좌우할 것이다.

 

참고문헌

Bakiner, Onur. 2014. “Truth Commission Impact: An Assessment of How Commissions Influence Politics and Society.” International Journal of Transitional Justice 8(1): 6-30.

Deliu, Nina, et al. 2024. “Reinforcement Learning in Modern Biostatistics: Constructing Optimal Adaptive Interventions.” International Statistical Review 92(3): 487-522.

Fassnacht, Diego. 2024. “East Germany Votes for Right-Wing AfD, Against Ukraine War.” Asia Times, September 2. https://asiatimes.com/2024/09/east-germany-votes-for-right-wing-afd-against-ukraine-war/ (검색일: 2025년 11월 14일).

Forschungsgruppe Wahlen. 2025. “ZDF Frontal Survey: German Public Opinion on Military Aid to Ukraine.” February. Reported in Kyiv Independent, February 6. https://kyivindependent.com/majority-of-germans-support-military-aid-to-ukraine-survey-shows/ (검색일: 2025년 11월 20일).

Frommeyer, Timothy C., et al. 2025. “Reinforcement Learning and Its Clinical Applications Within Healthcare: A Systematic Review of Precision Medicine and Dynamic Treatment Regimes.” Healthcare (Basel) 13(14): 1752.

Körber-Stiftung & Verian Institute. 2024. “The Berlin Pulse 2024: German Foreign Policy in Times of Change.” November 2024.

Lamont, Christopher K., and Héctor Boanada-Fuchs. 2021. “Measuring Impact in Transitional Justice Research: Opportunities and Challenges.” Journal of Human Rights 20(4): 480-497.

Murphy, Susan A. 2003. “Optimal Dynamic Treatment Regimes.” Journal of the Royal Statistical Society: Series B 65(2): 331-355.

Schuetze, Christopher F. 2025. “Why Germany Is Still Divided When It Comes to Russia.” The New York Times, November 7. https://www.nytimes.com/2025/11/07/world/europe/germany-russia-divide.html (검색일: 2025년 11월 8일).

Vinck, Patrick, and Phuong N. Pham. 2021. “Transitional Justice and Public Health in the Democratic Republic of Congo: A Mixed-Methods Study.” Lancet Global Health 9(5): e663-e671.

 

 

 

● Issue Brief는 집필자의 견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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