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6호] 조영웅 전문연구원 - 납북자 문제의 변천과 과제
-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공용/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 7월 14일
- 4분 분량
제176호
조영웅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납북자 문제의 변천과 과제
2025년 6월 28일 정부는 ‘제1회 6‧25전쟁 납북자 기억의 날’기념행사를 개최한다. 한국전쟁 납북 피해자를 기억하고 납북자 문제에 대한 대국민적 관심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1953년 정전 이후 72년이 흐른 지금도, 납북자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북관계의 그림자로 남아 있다.
본 이슈 브리프에서는 제1회 6‧25전쟁 납북자 기억의 날을 맞아 납북자 피해 실태와 남북 대응의 변천 과정을 짚어보고, 간단히 제언하고자 한다.
한국전쟁은 대규모 납북자 피해를 야기했다.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 위원회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납북자 규모를 10 만명 규모로 추산한다. 전시 납북자에는 일반 주민에서부터 정부 관료, 언론인, 지식인 등 사회 지도층 인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이 포함된다. 이들은 전쟁 수행을 위해 인민군 보조 인력으로 강제 동원되거나, 그 외에도 정치선전, 노동 전선에 투입되기도 하였다.
1953년 7월 27일 정전 이후에도 납북 피해는 계속되었다. 특히, 체제 경쟁이 심화했던 1960~70년대에는 어민 집단 피랍 사건, KAL기 공중납치 사건 등 북측의 조직적 납치로 인해 많은 민간인이 북한에 억류되었으며, 해외에서 한국인이나 재일교포가 납치되는 사례도 발생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전후 납북 피해 사례는 총 3,835건으로 추정되며, 이 중 516명은 끝내 귀환하지 못했다.
납북자 문제에 대한 남북의 대응은 남한의 문제 해결 요구와 북한의 부인과 침묵이 순차적으로 발생하는 양상이 반복하였다. 물론, 국내외 정세와 대북정책 기조에 따라 일부 제한적인 변화가 나타나기도 했다. 우선, 한국정부는 정전 직후부터 납북자 송환을 지속 요구해 왔다. 정전협정 직후 이승만 정부는 전시 민간인 납북을 북한의 전쟁범죄로 규탄하고 국제사회에 문제 해결을 호소했다. 그러나 냉전과 남북 대립 상황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는 이뤄지지 못했다. 이후 1960-70년대 박정희 정부 시기에는 대남 도발이 빈발하여 납북자 문제가 주목 받기 어려웠다. 실상, 정부도 안보상 이유로 납북자 가족의 공개적 호소를 통제하는 등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를 통해 인권 의식이 신장하였고 이는 납북자 문제가 공론화되는 기반으로 작용했다. 소극적인 정부의 대응과 달리, 민간 차원에서 피해 실태를 기록하고 구명 노력을 이어가고 있었던 납북 피해자 가족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1990년대 들어 의 진전이 기대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길 원했고, 비교적 민감한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민간 교류를 추진하기 시작한 김대중 정부도 납북자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루지는 못했다. 다만, 「군사정전협정 체결 이후 납북피해자에 대한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납북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국가 차원의 보상 및 생활지원 근거를 처음 마련하였다. 이어 2006년에는 국군포로 송환 및 대우에 관한 법률이, 2010년에는 한국전쟁기 납북자에 초점을 맞춘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전시 납북자의 공식 조사와 명예회복 작업이 시작되었다. 2010년대 초 이 법에 따라 국무총리 산하에 납북피해 진상규명위원회가 설치되어 수년에 걸친 조사를 통해 전시 납북자 명 부와 피해보고서를 발간함으로써 약 9만5천 명에 달하는 납북 피해자들의 존재를 공식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최근 2023년에는 2012년 이후 활동이 중단되었던 범정부 차원의 납북자대책위원회가 11년 만에야 재가동되기도 했으며, 6월 28일을 전술한 한국전쟁 납북자 기억의 날로 지정하는 법 개정과 기념행사 개최를 추진하고 유엔 총회·인권이사회 등에서 북한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하는 등 노력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 한국 정부의 노력은 실질적 문제 해결 책임 국가인 북한의 부인과 침묵 속에서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1953년 정전 직후 북한은 남한의 납북자 송환 요구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납북자의 존재 자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전후 발생한 납북 피해에 대한 대응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은 여러 납북 피해 사건에 대해서, 이들의 월북은 납북이 아닌, 자진 월북이라 주장하면서 납북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한반도 긴장 완화와 국제사회의 압력이 병행 작용하는 시점에서, 납북자 문제에 대한 북한의 대응에는 여전히 제한적이나 일정 수준 변화가 나타나기도 했다. 2000년대 초,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국 정부가 거듭 납북자 생사 확인을 요구하자, 북한은 공식 인정은 아니지만 일부 납북자 가족상봉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식으로 응답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2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본 고이즈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사건을 시인하고 관련 피해자 5명을 송환했다. 이는 북한이 납치 문제를 부분 시인한 첫 사례로, 일본뿐 아니라 한국 납북자 피해 가족들의 기대를 크게 키웠다. 그러나 한국인 납북자 문제에 대한 북한의 응답은 없었다.
2005년, 남측이 국내 여론을 반영해 납북자 생존자 명단을 요구하고 국제사회에서도 북한인권 문제가 부각되자, 북한은 일부나마 납북 사실을 인정하는 유연성을 보였다.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북한은 남한 측이 제출한 일부 납북자·국군포로 명단에 대해 처음으로 응답을 내어, 납북자 11명과 전쟁포로 10명의 생존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또한 그해 11월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이들 중 일부를 특별초청 형식으로 참석시켜 가족들과 만나게 하는 전향적인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정치적 상징성 이상의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2008년 이후 남북 관계 경색과 더불어 북한은 다시 납북자 문제에 침묵하거나 “이미 해결된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대화를 거부했다. 이는 인도적 사안인 납북자 문제가 남북관계의 종속변수로 취급되어 온 현실을 드러낸다.
반세기 넘게 계속되고 있는 납북자 문제의 원활한 해결을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다각적인 정책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주목할 점은, 납북자 문제 해결이 남북 간 장기적인 신뢰 구축과 관계 형성에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단기적 정치 논리에 밀려 후 순위로 취급되거나 배제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문제 해결 책임자인 북한의 동의 내지는 동조가 우선 필요하다. 그것이 결여된 어떠한 노력도 실질적인 성과로 연결되기 힘들다. 더불어, 이러한 작업은 가능한 신속히 이뤄질 필요가 있다. 피해자 대부분이 고령인 상황에서, 이들의 생환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노력 보다는 단기적인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치 외의 차원의 방법을 통한 문제 해결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차원의 문제 해결 방식은 너무나 많은 변수가 개입하며, 개중에는 우리가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도 적지 않다. 특히, 정치적 대화가 언제 가능할지는 현재 상황에서 기약하기도 어렵다.
경제적 인센티브는 대안적 방법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일부에서는 경제적 지원에 대한 거부감이나 납북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 내지는 북한의 공식적인 사과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비판을 제기한다. 그러나 생존 납북 피해자 규모가 크지 않아 예상되는 인센티브 지급 규모가 크지 않으며, 고령의 피해자 입장에서는 진상규명이나 공식적인 사과만큼이나 남한의 가족과의 재회 고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대안일 수 있다.
대북 정책 차원에서도 보다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향후 남북 대화가 재개될 경우, 납북자 문제가 ‘민감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공식 의제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중앙 차원의 정치 대화와는 별도로, 적십자 채널을 통한 인도적 대화를 병행하고, 그 과정에서 납북자 문제를 다루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아울러 ‘상호 인도적 지원’이라는 틀 안에서 북한이 체면을 유지하며 문제 해결에 응할 수 있도록 유연한 협상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국내 차원의 문제 해결 노력도 필요하다. 납북 피해자 가족에 대한 지원과 배상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납북자 관련 모든 기록과 증언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해야 한다. 세월의 경과로 피해 당사자와 가족들이 고령화되고 있는 만큼, 이들의 구술 증언을 남기고 명예회복을 위한 제도적 보전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 차원의 기념사업 등을 통해 국민적 관심을 유지하려는 노력도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 Issue Brief는 집필자의 견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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