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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호] 김현 연구교수 - 계엄에서 탄핵까지, 북한은 어떻게 보도했는가?


제174호


김현

(연세대학교 디지털사회과학센터 연구교수)



계엄에서 탄핵까지, 북한은 어떻게 보도했는가?

     

 2024년 12월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에서 시작된 일련의 정치적 격변은 2025년 4월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으로 일단락되었다. 이 과정은 헌정사상 유례없는 급변 사태로, 남한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이러한 격동의 정국에 대해 북한이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고, 이를 어떻게 보도했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단지 북한 언론의 보도 양상을 분석하는 차원을 넘어, 북한 체제가 외부 정치 불안정성을 어떻게 활용하며, 남북 간 관계를 어떤 전략적 틀에서 재구성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된다. 북한은 과거에도 남한의 정치적 혼란을 체제 우위 선전의 재료로 적극 활용해왔다. 2016-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 당시 북한 매체는 이례적으로 빠르고 감정적인 보도를 쏟아냈으며, 촛불집회를 ‘민중혁명’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에 대한 북한의 보도는 한층 절제되고 전략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시기별로 뚜렷한 온도 차를 보였다. 이와 같은 변화는 단순한 보도 양식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이 남한과의 관계를 어떤 틀로 재규정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정치적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 매체는 국내외 정치 상황을 내부 결속과 체제 정당성 확보에 활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남한의 정치 혼란은 내부 주민들에게 ‘불안정하고 무질서한 남조선’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북한 체제의 상대적 안정성을 부각시키는 선전 도구로 쓰인다. 그러나 최근에는 북한이 단순히 비난과 조롱의 수위를 조절하는 수준을 넘어, 외신을 인용하는 방식이나 보도 시점의 조절을 통해 대남 전략의 방향성을 조심스럽게 관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이후, 북한 매체는 약 8일간 침묵을 유지하다가 12월 11일부터 본격적으로 관련 사태를 집중 보도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중앙통신, 노동신문 등 북한의 주요 관영 매체들은 이 시점부터 대대적인 보도에 돌입하였고, 노동신문 국제면의 80% 이상을 해당 기사로 채우는 한편, 대규모 촛불집회 현장을 담은 사진 20여 장을 함께 게재하였다. 이는 북한이 이번 사태를 단순한 뉴스가 아닌 체제 선전의 핵심 소재로 삼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보도 내용은 계엄령 선포와 해제, 계엄군의 국회 진입 및 봉쇄, 계엄령 해제 이후 이어진 대규모 촛불집회 등 일련의 정치 일정을 상세히 다루었다. 특히 ‘사회적 격변’, ‘아비규환’, ‘파쇼 독재’ 등 감정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을 통해 남한의 혼란을 최대한 부각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계엄군이 국회를 물리적으로 봉쇄하고 특수전사령부 병력이 투입된 사실, 계엄에 반발한 시민들이 윤 대통령을 규탄하는 장면도 언급되었으며, 보도의 구체성은 북한 매체로서는 이례적으로 높았다.

  그러나 동시에, 계엄군과 시민 또는 국회 보좌진 간의 충돌 장면과 같은 과도한 폭력성이나 불확실성이 있는 장면은 보도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 이는 북한이 남한의 체제 혼란을 강조하되, 시위의 주체성이나 시민의 저항적 역량을 지나치게 부각하지 않으려는 전략적 선별로 해석된다. 결과적으로 이 시기 북한 보도는 체제 우위 선전과 내부 결속 강화를 위한 선동적 보도의 전형을 보여준다.

  2024년 12월 14일 국회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하자, 북한 매체는 이틀 뒤 관련 내용을 보도하였다. 이후 2025년 4월 초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까지 약 네 달간 북한은 간헐적이고 절제된 방식으로 탄핵 정국을 다루었다. 초기의 감정적이고 공격적인 보도와는 달리 이 시기의 보도는 외신 인용과 사실 전달에 주력하며 보도 수위와 빈도 모두 점차 낮아졌다. 북한 매체는 탄핵소추안 가결, 대통령 직무정지, 권한대행 체제 가동, 윤 대통령의 체포 및 구속, 헌법재판소의 심리 과정 등 남한의 정치 일정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전달하였다. 동시에, 윤 대통령을 ‘반란의 우두머리’, ‘괴뢰’로 지칭하며 계엄령과 국회 봉쇄 시도를 강하게 비판하였다. 이러한 언사는 초기와 비교해 수위는 낮아졌지만 여전히 북한 특유의 체제 비난 어법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7년 박근혜 탄핵 때와 달리 논평이나 직접적 비난은 자제하고 외신 인용과 사실 전달에 집중하는 절제된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보도 양상은 단순한 검열의 결과라기보다, 북한이 대남 비난 수위를 조절하고 외부 메시지 전략을 정교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빠르고 감정적인 반응과는 달리, 이번 사태에서는 보다 느슨하고 계산된 방식으로 정보를 선별하고 구조화하는 보도 전략이 채택되었다.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전원일치로 윤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하자, 북한 매체는 하루 뒤인 4월 5일 관련 사실을 간단히 보도하였다.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8명 전원일치로 윤석열 파면이라는 주요 사실을 짧게 언급하는 데 그쳤으며, 어떠한 자체 논평이나 비난성 해설도 함께 내보내지 않았다. 이 보도에서는 로이터, AP, 가디언 등의 외신 인용을 통해 윤석열의 정치 경력은 끝났지만, 한국 사회의 혼란은 여전히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부각시키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메시지도 북한 당국의 직접 해석 없이 외부 시각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제시되었으며, 감정적 언어나 선동적 표현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이처럼 북한이 최종적인 탄핵 결정에 대해 신속하지만 매우 제한된 반응을 보인 것은, 단지 정보 통제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남한과의 전략적 거리두기를 강화하는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2024년 하반기 북한이 ‘남조선을 더 이상 같은 민족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과 함께 ‘적대적 두 국가관계’ 프레임을 공식화한 점을 고려하면, 탄핵 보도에서 나타난 중립적이고 관망적 태도는 대남 전략의 근본적 전환을 반영한 결과라 볼 수 있다.

  북한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태 보도는 시기별로 뚜렷한 변화를 보이며, 대남 전략의 미세한 조정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계엄 직후에는 선전과 선동을 통해 남한 체제의 불안정성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하였고, 이는 대내 선전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목적에 부합하였다. 이후 탄핵 심판이 장기화되면서 북한은 감정적 보도를 줄이고 외신 인용과 사실 전달 위주의 절제된 보도로 전환하였으며, 이는 남한 정국에 대한 과도한 개입을 피하려는 전략적 판단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탄핵 인용 이후에는 중립적 보도와 신속한 거리두기를 통해 남한과의 관계 재정립이라는 장기 전략을 엿보게 한다. 결국 북한 보도는 남한의 혼란을 체제 선전 소재로 활용하면서도, 남북관계 변화와 대외 전략에 따라 그 방식과 강도를 유연하게 조절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보도 양상은 단지 언론의 반응이 아니라, 체제의 전략적 메시지로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 Issue Brief는 집필자의 견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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