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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호] 문상석 전문연구원 - 사회변동과 북한의 변화, 그리고 북미회담

제125호

문 상 석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사회변동과 북한의 변화, 그리고 북미회담

하노이에서의 북미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과 미국 사이에 흐르는 기류는 겉으로는 비핵화와 대화 그리고 외교의 문이 열려 있는 듯하다. 그러나 김정은이나 트럼프가 국내에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은 녹록치 않다. 서로 국내 문제로 하노이 회담에서 작게나마 타협하고 협상을 체결할 것이라고 믿었던 상황에서 결렬된 이후 향후 북미 회담과 비핵화 문제는 지도자들이 양국에서 처한 국내 상황과 연결되면서 단순하지만 복합하게 진행될 것 같다. 이미 서로가 원하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확실하게 인식하게 된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현재는 서로에게 서운한 말을 계속하면서 강 대 강의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다가 서로가 대화의 테이블을 뒤엎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혹자는 “미국과 북한이 너무 멀리 와 있기 때문에 이번에 문을 대화의 문을 닫지는 않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운전자 역할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등 대화는 시간의 문제로 결국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측하기도 한다. 다양한 설이 난무하는 현 시점에서 미국보다 북한이 북미회담에 더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유로 북한이 ‘국제사회에 편입’ 혹은 ‘정상국가’로의 변화를 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 사회변동과 북한사회의 변화라는 원인 변수가 있다. 그것은 북한에서 지난 십여 년간 일어난 세계화의 결과일 것이다. 북한이 은둔국가라고 하지만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로서 국가기능을 이미 오래전에 상실하고 시장을 통제하기보다 ‘장마당’이라는 부분적 시장의 활성화를 통해서 국가의 경제 위기를 극복해왔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다. 성장하는 장마당에 기대를 거는 북한 주민이 많아지고 그들을 통해서 부를 축적하는 당 간부, 엘리트들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은 북한에서의 사회변동과 북한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현상인 것이다.

사회운동을 설명하는 이론 중 1970년에 테드 거어(Ted Gurr)의 상대적 박탈이론이 있다. 행위자의 ‘가치 기대’와 ‘가치 능력’ 사이의 ‘인지된 괴리’를 상대적 박탈감이 혁명이나 사회운동의 촉발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절대적 빈곤의 상태에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혁명이 발생할 수 있는 이유는 가치 기대가 크지만 가치 능력이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거어는 세 가지 박탈을 제시하면서 상대적 박탈을 구체화한다. 집단내의 가치기대가 상대적으로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지만 가치능력이 떨어진다고 느낄 때 일어나는 ‘체감적 박탈(decremental deprivation)’, 대중의 열망수준은 증가하는데 가치능력이 일정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새로운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할 때 느끼는 분노로 일어나는 ‘열망적 박탈(aspirational deprivation)’, 사회경제적 발전 뒤 급격한 후퇴가 일어날 때, 사람들은 기대와 능력 사이 격차를 갑작스럽게 경험하게 되면서 느끼는 분노로 경험하는 ‘점진적 박탈(progressive deprivation)’ 등이 상대적 박탈이론을 구성한다.

북한이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이익을 얻고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누구일까 생각해보면 주민보다는 권력에 접근이 용이한 사람들일 수 있다. 이들에 대한 불만이 주민들로부터 나타날 수 있다는 단순한 상대적 박탈감 이론이 있을 수 있다. 즉 일반 북한 주민과 엘리트 사이 상대적 박탈감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엘리트와 주민 사이 상대적 박탈감으로 사회 변화를 이끌어 낼 수는 없다. 사회주의 국가가 “이밥에 고깃국”을 시민들에게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때, 절대적 빈곤의 상황으로 위기에 처할 수 있지만 엘리트를 통제하면서 사회 통제력을 잃지 않았던 북한의 역사를 보면 단순 논리로 북한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주민과 엘리트의 분열이 아니라 엘리트의 분열과 이탈을 상대적 박탈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거어의 이론으로 “북한이 북미대화에 더 절실할 것이다.”라는 예측을 설명하자면, 북한은 이미 오랜 기간 국제사회의 제제로 인해서 국가단위로의 자본주의 혹은 시장을 계획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그런데 북한은 이미 자의반 타의반으로 세계화의 물결에 편입되었다.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를 접하면서 북한은 위기를 넘어서 새로운 경제 발전 모델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은 전대미문의 제재로 인해 새롭게 형성해 나가고 있는 부분 시장 모델이 붕괴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유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힘의 대결에서 중국이 미국에 완패하면서 세계의 제국으로서 미국의 위상이 증명된 상태에서 중국이 북한을 위해서 희생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장마당을 비롯한 새롭게 형성된 북한의 자급자족 경제 모델이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부를 축적한 이들이 이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적 박탈감을 발생시키는 사회적 요인은 기대를 상승시키는 요인과 가치 능력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구성된다. 외국과의 무역에서 자신들의 자본을 축적한 이들이 무역이 중단되고 제재가 더욱 강화된다고 할 때 제재를 해제하지 못하는 정권에 대해 불만이 축적될 수 있다. 북한이 접하는 자본주의 혹은 시장에서의 대응을 통해서 부를 축적하고 자신들과 가족의 미래를 맡긴이들은 자신들의 대처 능력만으로 감당 못하는 제재로 기회가 감소하거나 실질적으로 감소할 때 절망하면서 분노한다는 것이다. 북한 정부와 지배자들의 잘못된 정치로 인해 자신들의 미래 삶에 대한 능력이 감소하거나 낮아진다는 것이다. 이들의 분노의 방향은 실질적인 북한의 지도자와 체제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북한 핸드폰 600만대 보급이나 아직 낮지만 20%에 달하는 인터넷 등의 보급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분노하는 이들의 분노의 감염이 급속도로 확산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북한이 이미 많은 연료를 소비할 수밖에 없는 경제 구조로 변화하고 있으며 새로운 시장의 경험, 외부 문화를 경험하면서 사회 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북한 김정은이나 상층 엘리트들이 걱정하는 것은 성공적이지 못한 개혁 혹은 좌절된 경제 성장으로 인해 정권의 붕괴를 가져와 혁명의 시대로 변화하는 것이다. 외부의 위협보다 더 심각한 위험인 것이다. 개혁과 경제 성장을 제외한 새로운 길을 통해서 생존을 모색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는 점에서 북한 엘리트에게 북한에 대한 제재 해제와 경제 성장은 정권의 안녕에 필연적인 요소가 되었다고 보여 진다. 그렇다면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무엇일까? 북미회담과 제재 완화 혹은 해제일 것이다. 그만큼 북한이 트럼프의 미국보다는 절박해보이고 더 적극적일 수 있다. 그러기에 북한이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를 복구했다는 것은 빨리 제재 해제를 위한 회담을 열기 위해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손을 내밀어 달라 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북한이 실질적으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택할 수도 있다. 북한은 자존심이 강하고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장렬히 죽는 것을 택할 수도 있다.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다. 전부를 포기하라는 것은 북한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북한으로서 신뢰가 깨어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시점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카드일 것이다. 안에서 강경파의 반대도 극복해야 하는 지도자에게 무엇이 필요할지 정답을 찾기 어렵다.

아쉽게도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미국이며 미국의 의지는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미국식의 의미로 완전한 비핵화는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자존심을 지켜주면서 북한이 회담장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카드는 무엇일까? 당분간 지금처럼 강 대 강 혹은 소강 국면에 접어들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미국과 북한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카드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Issue Brief는 집필자의 견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의 공식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이슈브리프 1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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