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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호] 권소영 전문연구원 -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전략과 대북 공공외교의 의미



제154호

권 소 영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한국조지메이슨대학교 교수)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전략과 대북 공공외교의 의미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정책 기조는 다자주의적 협력, 동맹과 파트너십 강화, 그리고 민주주의 가치의 수호를 골자로 하고 있다. 지난해 백악관에서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지침에서는 “미국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재개하여 중국이 아닌 미국이 국제 의제를 설정하도록 하겠다”고 밝히며 “전 세계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 권위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과 생각을 함께하는 동맹국과 파트너들과 함께 민주주의를 확산해 나가겠다”라고 굵은 글씨체로 강조했다. 미국 안보전략의 핵심은 반중봉쇄정책이다. 중국에 대항하는 아시아의 동맹국간의 네트워크와 다국적기구에 기반한 안보관계를 확장하고 심화함으로써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확립하겠다는 것이다.

미-중 경쟁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인해 동아시아 지역의 안보구도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지역안보구도의 재설계는 관련 국가들의 다양한 정책목표의 조율이나 거버넌스, 문제 해결을 추진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 메커니즘, 협의체의 형성을 의미한다. 아시아 지역의 안보구조와 전략구성 설계 과정에서 한국과 북한이 미국에게 어떠한 퍼즐 조각일지 궁금해진다.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언급했지만, 바이든 정부는 아직 인도-태평양전략을 위한 한국의 역할을 강요하거나 대북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표명하지는 않았다. 워싱턴 정가의 분위기를 보면 미-중 경쟁에 기반하여 재편하는 아시아 전략구조의 큰 그림 안에서 한국과 북한은 다소 소외된 듯한 느낌이다. 한국은 미-중 갈등 사이에서 곤란한 입장에 처해 있다. 진보-보수의 국내 정치적 분열, 경제적 이익, 중국과의 지리적 근접성, 한국의 자율성의 문제등이 얽혀 있어 선뜻 미국 편에 서기도 힘들다. 북한 또한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바이든식 대북정책은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도 아니고 트럼프식 ‘빅딜’도 아닌 차별된 접근법이라고 주장하지만, 대북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나 방법에 대한 언급 없이 외교의 문을 열어놓고 유연하게 접근하되 제재와 압박은 유지한다는 입장만 발표했을 뿐이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단기적인 해결을 목표로 하는 접근법이 아니라는 평가가 있는 가운데 최근 미국 정책전문가들 사이에 논의되고 있는 대북 공공외교의 방향성이 흥미롭다. 바이든 정부가 제시한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단계적 접근과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압박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원칙적이고 실용적인 정책으로서 공공외교가 언급되고 있다. 지금까지 북한인권문제는 북한정권에 대한 압력을 주는 전략적 지렛대 또는 북핵협상에 걸림돌로 간주되어 왔다. 그런데, 바이든 정부는 북한의 핵문제와 인권문제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북한이 핵능력을 보유하게 된 것은 북한정권의 체계적인 인권침해와 주민들의 자원 약탈로 가능했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 희생이 아니었다면 현재 수준의 핵능력을 가질 수 없었을 거라는 논리이다.

비핵화와 인권개선을 목표로 하는 대북 공공외교 정책은 정권이 아닌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그들 스스로 자신들이 처한 환경과 인권유린에 대한 자각을 하도록 돕는 방법들을 모색하는 것이다. 즉, 외부정보의 유입으로 북한 주민들이 그들의 시각을 넓히고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도록 장려하며 변화를 유도할 수 있도록 돕는 포괄적인 공공외교의 노력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정권의 행태 변화와 핵무기 포기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최근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에서 출간한 정책제안서를 살펴보면 1) 백악관은 공공외교가 미국의 외교정책 목표를 장기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임을 재확인할 것 2) 미국의 대북 공공외교 노력의 방향성, 조직, 책임을 공고히 할 수 있도록 그 주체와 대상을 찾아 힘을 실어줄 것 3) 북한에 정보를 주고, 북한을 이해하고, 북한주민들의 권리를 찾게 해 주는 현존의 노력들을 확대할 것 등의 세 가지 권고안을 제시한다. 이와 동시에 기존 공공외교 활동의 미비하고 한정적이던 방식을 뛰어넘기 위해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제시되면서 북한내 정보 유입을 위한 다양한 산-학-연-정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국내적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도구로 공공외교를 주목한 것은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대북 공공외교 정책안이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전략 논리에 맞추어 재정비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첫째, 논리의 변화다. 핵무기 개발은 인민의 인권적인 희생으로 가능했으며 내부적인 변화가 행태의 변화를 가져오고 핵무기도 포기하게 할 것이라는 주장을 바탕으로 북한의 비핵화와 북한 주민들의 삶의 개선, 북한 인권문제를 동일선상에 놓고 해결책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대북재제와 인권압박은 미중간 경쟁에서도 강조하는 민주주의 수호와 확산이라는 외교안보목표에도 부합한다. 둘째는 속도와 방법의 변화다. 비핵화가 단기적으로 해결될 수 없고 북한 지도층이 핵이나 미사일 포기 의지가 없다는 전제 하에 일거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장기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을 취하면서 우회적인 방법으로 대북 공공외교 정책을 고려하고 있다. 북한주민들에게 정보를 주고 영향을 미쳐 그들이 내부적인 환경을 바꾸게 하는 것이고, 그러한 변화된 환경이 북한에 대한 정책목표에 달성할 수 있도록 미국을 돕는 조건들을 만들어 준다는 주장으로 공공외교를 통해 위로부터(top-down)가 아닌 아래로부터(bottom-up) 변화를 모색한다는 것이다. 셋째, 전략적 가치의 변화이다. 미국의 아시아 안보전략이 중국에 집중되면서 북한의 태도, 한국의 협조 여부, 대내외적 여건에 따라 달라지는 대북 접근법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이에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대북 공공외교가 미국의 정책 목표인 북한의 비핵화와 북한인권개선을 가져올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조건이며 외교나 경제제재나 UN결의안과 같은 다른 정책적 도구를 상호적으로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면에서 유용한 정책적 옵션으로 등장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한정적이고 소극적인 방법을 재고하여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다양하고 진실된 컨텐츠와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국내적 환경을 변화시키고 내부적인 변화를 유도함으로써 북한정권의 행태를 변화시키고 비핵화를 장려할 수 있도록 한다는 주장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일괄타결식 문제 해결보다는 더 큰 목표를 추구하기 위한 탄력적이고 실용적이며 해결지향적(solution-oriented)인 대북정책을 선호하고 있고, 이를 지원하는 수단으로 대북 공공외교 정책이 워싱턴에서 회자되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미국의 대북정책의 방향과 조정, 기관의 역할에서 대북 공공외교가 차지할 비중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북미간 비핵화를 위한 협상 재개나 핵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대화에 대한 기대는 당분간 접어야 할 것 같다.




● Issue Brief는 집필 자의 견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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