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호
봉 영 식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아프가니스탄 종전과 한반도 정세
아프가니스탄 현지 시간으로 2021년 8월 30일 밤 11시 59분 미군의 마지막 C-17 수송기가 아프가니스탄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을 떠남으로서 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21년 7월 8일 발표한 전면 철군 시한에 맞춰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었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지난 2001년 9/11 알카에다 테러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2001년 10월‘항구적 자유(Enduring Freedom)’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이하 아프간) 전쟁은 탈레반의 승리와 미국의 패배로 20년 만에 막을 내린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미군은 지난 17일 간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수작전으로 12만 명이 넘는 미국과 동맹의 시민을 대피시켰다”면서 “아프간에서 20년간의 우리 군대 주둔이 끝났다”고 선언하였다. 8월 31일 미국 국방부가 '아프간을 떠나는 마지막 미군 (The last American soldier to leave Afghanistan)이라는 제목과 함께 공개한 미 육군 82공수부대 사령관 크리스 도나휴 소장의 사진은 강대국 미국의 이미지로는 도저히 믿어지지 모습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끝났지만, 아프간 종전과 미국의 철수가 남긴 국제정치와 안보상의 교훈과 함의는 미국의 패배와 탈레반의 승리라는 짧은 문장으로 모두 요약될 수 없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통일이라는 지상과제가 남아 있고, 한미안보동맹과 미중 패권경쟁이라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엄중한 안보현실을 고려할 때, 아프간 전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은 대한민국의 안보환경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본 이슈브리프는 아프간 전과 그 종식을 놓고 제기된 다음 두 가지 질문에 대하여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결국 대실패였는가?
둘째, 종전 후 미국은 자국의 안보공약과 동맹을 축소 또는 포기할 것인가?
특히 미국이 한반도에서 철수할 가능성은 얼마나 높은가?
1.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결국 대실패였는가?
영속적 자유 작전이 성공이냐 실패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무엇보다 그 작전의 중심 목표가 무엇이었는가를 놓고 판단해야 한다. 지난 20년간 미국은 막대한 희생과 비용을 감수하고도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과의 전쟁을 계속 수행하였다. 지난 20년간 미국은 2,448명의 미군이 사망과 20,722명 부상, 77만명의 참전, 1조 달러가 넘는 전쟁수행비용을 감수하였고, 여기에 중국의 부상 저지 실패, 미국의 국제공신력과 이미지 실추라는 커다란 간접손실도 발생하였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실패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으나, 전쟁에 대한 평가를 전쟁 초기와 후반부로 나누어 시기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2001년 10월 조지 부시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시작하였을 때 전쟁의 목표는 일차적으로 9.11의 주범 알카에다 거점 제거 및 관련 테러리스트 검속이었다. 탈레반 세력 이 알카에다 세력을 넘기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부시 행정부는 전쟁을 시작하였다. 전쟁 초반 탈레반 정권은 붕괴되어 알카에다와 다른 국제테러집단은 주요 거점을 상실했고, 이후 형해화 수순으로 들어갔다. 10년간의 추적 끝에 오바마 행정부는 2011년 5월 오사마 빈라덴을 제거하였다. 2001년 9/11 테러를 당한 이후 미국내 여론은 아프간 전을 반드시 필요한 무력행사, 정의의 전쟁으로 강력하게 지지하였고, 이러한 여론은 지속되었다. 미국 내 반전여론의 타겟은 항상 이라크 전쟁이었지, 아프간 전쟁이 아니었다. 아프간 전 종식에 대한 여론이 높아진 것은 탈레반 축출에서 끝나지 않고 미국정부가 아프가니스탄 근대국가건설이라는 확대된 새로운 목표를 추구하면서 다시 10년 이상을 탈레반과 대치하면서부터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전 종전과 미군철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미국내 극심한 여론과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비판이 2022년 11월 중간선거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비판여론은 아프간 전쟁 종식 결정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종전과정과 철수과정의 폐해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 중간 선거까지는 아직 12개월 이상의 시간이 남았다는 점, 그리고 미국 국내정치 상 가장 큰 이슈는 경제와 코로나 방역, 사회적 갈등치유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2. 아프가니스탄 종전 후 미국은 자국의 안보공약과 동맹을 축소 또는 포기할 것인가? 특히 미국이 한반도에서 철수할 가능성은 얼마나 높은가?
미국내 안보정책 관련 전문가와 전직 관료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점은 이번 종전 결정은 바이든 행정부의 결정만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2001년 이후 20년 간 미국의 외교안보정책의 화두는 테러와의 전쟁이었다. 테러와의 전쟁에 몰두하면서 미국은 자국경제 경쟁력의 손실, 중국의 부상 허용, 막대한 인명피해, 사회적 갈등과 정부에 대한 불신 팽배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번 종전 결정은 이제 미국이 9.11 테러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미국의 글로벌 리더쉽을 새로이 하고 새로운 외교안보정책을 구사하기 위한 첫 번째 주요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번 미군철수는 바이든 행정부의 결정이라기보다는 전임 트럼프 행정부가 2020년 2월 탈레반과 협상한 내용을 추인, 실행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철군과 병력 충원 사이에서 잠시 고심하였으나, 지난 4월 아프간 전 종식을 최종 결정했고, 9월 11일로 설정했던 철군 시한을 8월 31일로 앞당기기까지 하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이 부통령으로 재직하던 2008년 카불을 방문하고 전시 상황을 직접 관찰했을 때 이미 종전과 철군이 정답이라는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미군이 철수하면서 탈레반 통치하의 아프가니스탄은 이제 이란, 파키스탄, 러시아, 그리고 중국이 염려할 잠재적 위협국가가 되었다. 미국의 아프간 철군으로 미국과 동맹국 간의 균열이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자국이익우선주의로 계속 갈 것이고, 동맹국들은 미국의 안보공약을 점점 더 불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측은 몇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21세기에 미국과 동맹국들이 주로 협력해야 할 안보도전은 국제테러리즘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아니다. 비전통안보이슈에 관한 범지구적 협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취임 후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6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포함하여 누차 글로벌 보건 위기, 기후변화 대응, 민주주의 강화, 첨단기술분야협력, 법과 보편적 가치에 기초한 중국과의 경쟁 등을 주요 안보협력과제로 강조해왔다. 미국이 다른 국가와 협력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와는 다른 분야에서 협력하겠다는 것이 바이든 독트린의 핵심인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한미동맹과 대한민국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미국에게 소중한 안보협력국가로 부상하였다. 아프가니스탄 패전에서 미국이 얻은 교훈 중 가장 뼈저린 교훈은 미국을 포함한 그 어떤 강대국도 실패국가에서 근대국가를 건설할 수 없다는 점이다. 소련도 실패했고, 미국은 베트남, 이라크에 이어 다시 한번 실패하였다. 반면 한국전쟁 이후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인류역사상 드물게 성취한 한국은 미국이 가장 자랑스럽고 신뢰할 협력국가다. 주한 미군이 없어도 한국은 세계 6위에 해당하는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경제대국이며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다. 여기에 현존하는 북한의 군사위협, 중국, 러시아 군사력 등을 고려할 때 미국이 한반도에서 군사력 투사를 축소할 이유는 없다.
마지막으로 한국과 미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아프간 종전에 대한 북한의 태도를 주의깊게 살펴보고 대비해야 한다. 미국의 패전을 보면서 북한정권은 미국의 국력과 군사력 사용 의지를 과소평가하게 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고도화된 핵탄두와 장거리 미사일을 소유한 북한에 대한 미국의 태도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교전하는 미국의 태도가 같을 수 없다. 한 가지 위험한 시나리오는 대북경제제재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북한 정권이 테러리즘의 확산과 중동정세의 악화에 대한 미국의 경계심을 제대로 판단하지 않고 국제테러리스트 집단과 무기거래 또는 다른 형태의 거래를 하는 경우다. 지난 8월 17일 미국의 소리 방송은 이스라엘 민간기관 알마 연구교육센터의 보고서를 인용하여 레바논의 이슬람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북한의 도움으로 지하 터널을 건설했다고 보도하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유엔과 미국의 제재 대상인 북한의 조선광업개발무역회사는 2014년 헤즈볼라와 미화 1천3백만 달러 상당의 계약을 체결하고 헤즈볼라에게 기술력과 자재 등을 공급했다고 지적하였다. 이는 지난 2007년 이스라엘 공군이 전격적으로 시리아 내 오시라크 원전을 비밀작전을 수행하여 파괴하였을 때 원전건설에 북한이 개입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북한이 이스라엘과 미국이 심각하게 우려하고 단호하게 대처하는 테러집단의 무장화에 관여한다는 증거로 작용할 수 있고, 그 결과 미국의 대북정책은 범지구적 반테러정책, 핵비확산정책, 대중동평화정책과 연계되어 더욱 강경화될 위험성이 있다. 한국과 미국은 이러한 위험한 가능성에 대하여 북한 측에 조기에 또 적절한 경로를 통하여 명확하게 경고할 필요가 있다.
● Issue Brief는 집필 자의 견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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