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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호] 조진수 전문연구원 - 장마당 세대

제147호

조 진 수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장마당 세대

북한의 1990년대는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외부의 탈냉전과 1990년대 고난의 행군(1995-1999)이라는 내부의 위기가 맞물린 시기였다. 1989년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를 시작으로 1991년 소비에트가 붕괴되면서 이들 국가의 북한에 대한 지원은 중단되었다. 북한은 국내외 위기를 타개하고자 1990년대 초부터 핵모험 전략에 뛰어들었는데 이 와중에 1994년 김일성이 사망했으며 2년 간 계속된 수해로 인해 북한은 식량난, 에너지난, 외화난을 경험하게 되었고 결국 배급제도가 붕괴되었다. 대기근 동안 북한 주민들은 곳곳에 장마당을 만들어 식·의·주 문제를 해결하며 생존해나가기 시작했다. 북한에서 만들어진 자생적 시장화는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사회 현상이며 북한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경제주체라고 볼 수 있다. 북한 정권의 반시장화정책에 따른 통제와 허용의 반복 속에서 장마당은 본래 시장 기능에 암시장의 성격도 포함되어 진화하였으며 북한 주민들이 택한 자발적 시장화의 욕구는 현재 북한 특유의 경제체제에 이르는 계기가 되었다.

장마당 세대는 현재 20대-30대 초·중반에 해당하는 북한 청년들로 고난의 행군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자라난 세대로 정의할 수 있겠다. 이들은 배급제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로 이론적으로 공산주의 국가에서 시장을 그들의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자본주의자로 자라났다.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주민들은 낮에는 사회주의자, 밤에는 자본주의자로 살아간다고 말하기도 한다. 장마당 세대를 관찰하고 연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북한을 은둔의 왕국이라고들 말하는데 70여 년간 닫힌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현지사례연구가 불가능하며 문헌연구의 경우 통일부 산하 북한자료센터에 많은 북한 문헌이 비치되어 있기는 하나 북한 문헌은 당이 담론권을 장악하여 체제유지를 위한 정치선전 도구로 이용되므로 시각의 일방성과 한계를 지닌다. 특히 1967년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한 이후 김일성은 긍정감화(긍정적 모범을 통한 감화)하자고 하면서 신문에 비판적인 내용을 넣지 말라고 지시한 이후 모든 문헌은 수령에 집중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 사회의 미시적 변화를 나타내는 장마당, 장마당 세대 관련 기사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북한 정권이 청소년들에 대해 우려하는 기사를 몇 개 찾을 수 있었는데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2018년 제5호 인민교육에 실린 기사에서 요즘 청소년들은 지난 날 자기 부모들이 얼마나 고생하며 살아왔는지를 잘 모르며 제국주의 혁명투쟁의 시련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부르주아 사상에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청소년들이 불건전한 자유화 바람에 오염되면 조직생활을 싫어하는 자유주의자로 전락해서 쉽게 돌이킬 수 없다고 말한다.

장마당 세대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결국 장마당 세대인 탈북민 청년들과 직접적으로 심층면접을 진행해야 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탈북민들이 늘어나 3만 여명에 이르는데 이들을 통해서 제한적이나마 북한 사회를 미시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2012년 이후 국경이 강화되어 탈북민 수가 줄어들면서 고난의 행군 시기에 유·소년기를 거쳐 청년기에 이른 장마당 세대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필자는 논문을 위해 2년 전 장마당 세대인 20대 초, 중, 후반의 청년들을 어렵게 만나 심층 면접을 진행한 경험이 있는데 이를 계기로 장마당 세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들은 당시 탈북한 지 4-5년 정도밖에 안 된 청년들이었는데 한국 생활에 빨리 적응했으며 자신감과 여유가 느껴져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장마당 세대와 함께 일해 본 사람들은 이들이 이전 북한 세대보다 한국 사회에 빠르게 적응한다고 말한다. 면접내용 결과도 기존에 북한 주민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관을 깨는 대답들이어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탈북민들을 돕는 국제 NGO단체인 LiNK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장마당 세대(The Jangmadang Generation)’는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 웹사이트에서 2017년에 개봉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8명의 장마당 세대인 탈북민들과의 인터뷰로 이루어졌는데 감독(Sokeel Park and Chad Vickery)은 관객들이 북한 사회 변화의 선두에 선 장마당 세대의 창조성과 잠재력을 보길 바란다고 말한다. 이들은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부모 세대는 국가가 모든 것을 챙겨주던 배급제 시대에 자라났으나 자신들은 어려서부터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챙겨야 했으며 자신의 미래는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라왔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장사에 눈을 떠서 자본주의적 시장 감각이 체화되었으며 사회 곳곳의 하부 망에서 작동하는 미시적인 통제(거시적인 통제가 아닌)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대담하게 행동한다. 이는 이론적으로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에서 자본주의적인 장마당의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뇌물 등의 불법이 성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또한 장마당 세대에게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어렸을 때부터 암시장에서 유입된 CD, DVD, USB를 통해 접한 한국, 외국 드라마와 영화이다. 이들은 고난의 행군 이후부터 조심스럽게 은둔의 왕국에서 벗어나 외부 세계를 간접적으로 보고 느끼고 자라난 것이다. 다큐멘터리에서 중국과의 밀수로 유명한 지역인 양강도 혜산에서 온 25살의 한 여성은 자신이 15살부터 밀수를 시작했는데 한국 드라마에서 유행한 옷을 밀수해 와도 이것을 드러내어 광고하기 어려우므로 모델처럼 생긴 친구들에게 옷 열 벌을 번갈아 입혀 하루 종일 시장을 돌아다니게 해서 알리고 유행을 만든 후 옷을 팔았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의 세습적 통치 엘리트와 핵에 주목하는 동안 북한 사회 내부에서는 새로운 세대가 자라났으며 이들은 앞으로 북한의 미래를 이끌어갈 것이다. 장마당 세대를 깊이 살펴보고 연구하는 데는 아직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적어도 이 세대의 존재를 인지하고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 Issue Brief는 집필자의 견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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