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6호
봉 영 식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문재인 정부 후반기의 대북정책 전망
미국인들에게 대통령 선거가 11월의 국가대사로 자리잡았다면, 대한민국 국민에게 대통령 선거는 1987년 민주화와 대통령직선제 개헌이후 5년마다 찾아오는 연말의 국가대사로 자리잡아왔다. 이러한 정치달력은 2017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으로 이전패턴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이제 대한민국 대선은 겨울 이벤트가 아닌 봄 이벤트로 자리잡게 되었다. 2017년 5월 19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러한 ‘봄 대통령’의 첫 번째 사례다. 현 대통령의 궐위나 헌법개정에 따른 임기단축, 선거법 및 공휴일 개정이 없는 한, 20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선출하는 다음 대선은 2022년 3월 9일 수요일에 실시된다. 이 기준으로 계산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을 책임지고 이끌 시간은 2년이 채 안 남았다.
임기 잔여기간이 재임기간보다 훨씬 적게 남은 현직 대통령이 과연 충분히 소신과 철학을 정책에 반영하면서 주요 국정과제를 추진할 가능성은 얼마나 있을까?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그동안 국내외의 비판과 논란을 무릅쓰고 심혈을 기울인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구조를 정착시키려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본 이슈 브리프는 이 질문에 관련한 제반 여건과 기회를 살펴보고, 문재인 정부의 전략적 선택지를 예상해보고자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1월 신년사와 신년 언론 간담회를 통하여,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정상회담 결렬이후 정체된 미북 고위급 외교의 재개를 무조건 기다리기 보다는 손실된 대화 추동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한국이 몇 가지 실질적인 독자조치를 감행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밝혔다. 그 주요 사안들을 보면 첫째, 2032년 서울평양 올림픽 공동 유치 계획 의결, 남북한 철도연결사업 조사 재개, 개성공단 재가동, 그리고 개성공단-금강산 관광지 개별방문 프로그램 운용이다. 이 구상의 효과적인 추진을 위해 중국 시진핑 주석의 연초 공식방한을 적극 추진하여 대북 경협에 대한 유엔안보리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이해와 지지를 끌어내고, 북한이 대화의 협상의 장으로 다시 나올 명분과 실리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동시에 외교적 노력을 통한 북한 비핵화 노력과 대북제재 공조에서 한국이 이탈하지 않는다는 점을 미국에 명확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하였다. 예를 들어 1월 1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보고에서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우리 국민의 '북한 개별관광'과 관련, "유엔 제재는 물론 미국 독자 제재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며 "추진 과정에서 대북 제재에 저촉될 수 있는 부분을 고려하며 추진한다는 게 정부의 기본 입장"이라고 확인하였고, 여행객이 북한에서 사용하는 비용은 현지 실비 지급 성격이기 때문에 2017년 유엔안보리 결의안 2087호에서 금지한 '벌크캐쉬'(대량 현금) 이전으로 보기 어렵다는 해석도 밝혔다. 덧붙여 남측 방문자들의 신변안전을 우려하는 여론을 의식하여 통일부는 본격적인 관광 재개시 당국 간 포괄적인 신변안전 보장이 필요하며 신변안전보장 문제와 사업 구상 등에 있어서 당국 간 협의가 있을 것임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문대통령의 신년 대북정책 구상발표는 남북관계와 미북협상의 지지부진에 대한 초조함의 표현으로 파악하거나, 통치권자가 객관적인 정세분석과 동떨어진 일방적인 통일관과 평화정책을 고집한 것으로 단순히 치부해버릴 수는 없다. 북한의 4차, 5차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 미사일 화성 15호 실험이후 이어진 강력한 유엔안보리 제재와 미국을 포함한 다수 국가의 자체 대북경제제재의 압박 하에서 북한은 심각한 경제위기를 장기간 겪어 왔다. 큰 기대를 가지고 하노이에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담판을 기대했던 김정은 위원장은 평양에 빈손으로 귀국하였다. 당시 얼마나 크게 실망하였는지 김정은 위원장은 최선희 외무성 부부상에게 ‘이런 기차여행을 또 해야 하는가 (장거리 여행에 믿을 만한 전용기가 없는 김정은 위원장은 제2차 미북 정상회담 참석차 3일에 걸려 장장 4천500 킬로를 열차로 달려왔다)’고 한탄하였다고 한다. 아무리 북한 국가매체가 하노이 정상회담의 성과를 이야기하더라도, 열악한 경제사정에서 어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북한주민들의 실망이 얼마나 컸을 것인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벼랑에 몰린 북한 경제에 가뭄에 단비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은 중국의 단체 북한 관광이었다. 2018년 한 해만 대략 1백만 명의 중국인이 북한을 방문하여 일인당 평균 3백불 정도 지출을 하여, 외화고갈에 시달리던 북한정권에 큰 도움을 주었다. 문재인 정부의 개별관광 사업 아이디어는 이러한 중국 정책의 혜택을 경험한 북한정권이 남 북경협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에서 벗어나, 대화와 협상 테이블로 복귀할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 문재인 정부 잔여 임기동안 남북한 관계와 한반도 비핵화에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그 가능성은 다음과 같은 3가지 변수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변수는 4월 15일 국회의원 선거 결과다. 대다수의 유권자는 현 정부가 전례없는 국가위기사태에 나름대로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였다고 평가하고 있고, 이러한 긍정적인 대정부관이 이번 선거에서 집권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 전문가들의 예상이 맞다면 여당의 확실한 승리가 예상되고, 단지 변수는 전체 300석 중 절대과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할 것이냐의 문제로 보인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적극적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할 정치력을 확보하게 된다.
두 번째 변수는 오는 11월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다. 올해 초반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의 무난한 재선이 예상되었지만, 코로나 팬데믹(COVID-19 pandemic)이 미국 전역을 휩쓸기 시작하고 이제 미국내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존스 홉킨스 대학이 발표한 2020년 4월 11일 기준 확진자 55만명, 사망자 2만2천명)가 세계 어느 국가보다 많아지면서, 트럼프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 비판이 증가하고 있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가 가장 중요한 치적으로 내세운 경제호황이 치솟는 실업률과 주식시장 폭락으로 무색해졌다. 미 정부는 5월 1일부터 사회적 격리 정책의 대폭 완화를 고려하고 있지만, 과연 가능할지 아직 뚜렷한 방역결과가 보이지 않고 있고, 설사 일상생활 재개가 허용된다 하더라도 이미 위축된 내수시장과 산업활동이 조속히 회복되기는 힘들 것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의 승리도 다분히 가능해졌다.
세 번째 변수는 문재인 정부를 대하는 김정은 정권의 태도다. 이제까지 북한 입장에서는 남측제안에 대해 얼마든지 유연한 입장을 취해도 되는, 소위 꽃놀이패를 쥔 입장이었다. 한국 정부가 어떤 제안을 하면 시간을 두고 보면서 조건을 올릴 수 있었고, 어차피 미국을 설득할 능력이 부족한 한국이 내놓을 선물 보따리가 크지 않으니까, 그걸 받고 안받고 고민하기보다는 그걸 통해서 한·미 관계가 어그러지길 유도할 수 있었다. 결국 남북 협력을 통한 이익보다 한·미 갈등이라는 보다 큰 전략적 이익을 도모하거나, 대북제재완화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의 태도변화를 기다리는 입장이었다. 문재인 정부를 일방적으로 홀대하는 태도가 계속된다면 남측이 어떤 새로운 제안을 한다고 해도 무시당할 가능성이 높다.
4월 국회의원 선거 이후 문재인 정부는 보다 적극적으로 대북유화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으로 위기에 처한 국가경제 극복 방안의 하나로 ‘남북경제공동체’ 구상을 다시 제안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러한 남북경제공동체 구상이 처음 제기되었을 때 냉담했던 국민여론이 코로나 사태를 경험하면서 그 기대효과와 비용에 대한 생각을 얼마나 바꾸었을지 불확실하다. 오히려 내수진작과 기업보호를 위해 재정력을 집중해야할 정부가 한 눈을 팔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정부는 남북한 철도연결 및 현대화 사업의 타당성을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은 전체 화물수송의 90%, 여객수송의 61%를 열차가 담당할 만큼 철도 의존도가 높다. 그러나 전체 노선의 70% 이상이 일제강점기에 건설돼 노후도는 심각하고, 노선의 90% 이상이 단선이어서 북한 열차의 평균 속도는 시속 30~50km 에 불과하다. 보기에 따라서는 한국 건설업에게 블루 오션일 수 있고 국민혈세를 일방적으로 퍼붓는 사업이 될 수 있다. 특히 유엔안보리 결의안 2371호 18조는 북한과의 합작 산업 신규 및 확대를 금하고 있어서, 유엔 안보리의 승인이 필요한 사업이다.
대북유화정책에 대하여 미국이 계속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도 문재인 정부에게 큰 부담이다.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정(SMA) 협상은 아직도 타결전망이 불확실하다. 주한미군은 SMA 체결이 지연되면서 4월 1일부로 주한미군에서 일하는 한국인 근로자에 대해 무급휴직에 들어간 상태다. 한미관계에 긴장이 고조된다면 남북 관계와 미북관계가 상호 추동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남북교류협력사업이 대북제재 틀에서 충실히 이행될 것이라는 한국정부 입장에 대한 미국의 이해와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한층 어려워질 수 있다. 이미 미국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유화정책의 목표가 북한 비핵화가 우선인지, 남북 공조가 우선인지 상당히 혼란스럽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해리 해리스 미국대사가 문 대통령의 개별관광 등 남북협력 구상에 대해 “한·미 워킹그룹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자 청와대는 “부적절하다”며 “한국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반응하고, 일부 여당인사가 해리스 대사를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이라고 비난까지 했던 경우를 보면, 이러한 한미간 불편한 상태가 되풀이 될 가능성이 높게 보인다.
대중국 외교가 실질적으로 가동될 여건이 언제 마련될지 불확실한 것도 문재인 정부로서는 부담이다. 코로나 사태 극복 과정에서 한국과 중국 간의 협력과 신뢰구축이 상당한 진전을 보였으나, 중국이 아직 코로나 팬데믹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시진핑 정권이 한반도 정책에서 뚜렷한 입장을 표명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시진핑 정부와 협력하에 새로운 대북구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은 아무래도 코로나 사태로 연기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정치협상회의(정협) 양회(兩會)가 개최되고, 중국 공산당이 국가운영에 대한 사안이 논의, 결정하고 국가예산과 경제정책을 결정한 후에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코로나 사태 극복 및 만족할 만한 국회의원 선거로 고무된 문재인 정부가 대일강경외교기조로 돌아선다면 그 후폭풍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전에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로 압류된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 조치는 행정부가 개입할 수 없는 사법절차라고 규정하면서도 일본 기업의 배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치로 기업 자산 현금화가 만약 진행되면 그 이전과 이후의 정부 협상 전략과 대응은 분명히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 조치가 이뤄지면 한·일 관계가 급속히 냉각될 가능성이 높고, 한국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가 강화될 위험도 커진다. 이에 따른 정부의 대비책이 과연 얼마나 촘촘히 마련되어 있으며, 감당할 여력이 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과 분석이 필요하다. 한일 갈등이 악화될 시, 한미일 안보공조의 약화, 한국의 외교적 고립, 국내경제위기 심화 등 도미노 현상이 우려된다. 여기에 한미, 한미일 외교안보공조 및 중국의 무개입 틈새를 노린 북한의 도발행위가 이어질 경우, 대북협력기조는 국내외 지지와 이해를 담보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 Issue Brief는 집필자의 견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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