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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호] 김명세 전문연구원 - 북한 노동당 제8차 대회 규약 개정과 대남인식 변화


제 163호


김명세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북한 노동당 제8차 대회 규약 개정과 대남인식 변화


올해 7월 북한 노동당 부부장 김여정은 한국을 비난하는 담화를 연이어 발표하면서(7.10, 7.11, 7.17) 이례적으로 ‘대한민국’ 용어를 사용하였다. ‘대한민국’ 용어 사용은 이후 최고지도자와 군부 고위층 연설들과 총참모부 보도들에서도 이어졌다. 그 연장인 듯 제19회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북한 감독들은 한국 기자들의 ‘북한’, 심지어 ‘북측’ 호칭까지 거부하며 ‘국호의 올바른 사용’을 완강히 요구하였다.

하지만 북한은 중앙TV를 통해 남북 여자축구경기를 녹화로 보여주면서 한국을 ‘괴뢰’로 적시하였다. 과거 ‘남조선’ 용어와 함께 썼던 것과 달리 이제 ‘괴뢰’ 용어는 거의 독립적으로 쓰고 있다. ‘대한민국’과 ‘괴뢰’ 용어 혼용은 북한의 대남인식이 통일 지향적 특수 관계에서 보통 국가 관계로 전환한 것인지, 아니면 아예 한국을 인정하지 않기로 했는지 진의를 궁금하게 한다. 그 궁금증의 실마리를 2021년 1월 노동당 제8차 대회의 개정 당 규약에서 밝힌 당의 당면목적과 최종목적의 변화에서 찾아보려 한다.



북한 정치에서 노동당 규약 개정의 의미


보통 북한에서 노동당은 ‘혁명의 참모부’로 불린다. 한국에서 국정으로 통칭 되는 ‘혁명’을 영도해나감에 있어 노동당은 혁명의 전략과 전술을 세우고 집행을 지도하는 최고 집단이다. 바로 혁명의 전략 전술 수립과 집행을 비롯한 당 활동 전반을 형식적으로 규율하는 것이 당규약이다.

당 규약은 혁명의 성과와 실패, 도전을 비롯한 새로운 시대 변화들을 반영하여 개정하는데 이를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이 당대 시대 평가다. 시대 변화라 할 만큼의 중대한 성과들은 무엇이고, 다음 단계 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단기, 중장기 과제들은 무엇인지를 거대한 역사적 관점에서 규명하고 당 규약에 새롭게 반영하는 과정이 규약 개정이다. 당 규약은 기본적으로 당 대회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개정된다.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당의 당면목적과 최종목적 개정


북한은 그동안 당 대회나 대표자회들에서 당의 당면목적과 최종목적을 비롯하여 당 규약 내용을 꾸준히 개정해 왔다. 2021년 1월 노동당 제8차 대회 이전 당 규약에 명시된 당의 당면목적과 최종목적은 다음과 같다.

          

“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 강성국가를 건설하고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 민주주의혁명의 과업을 수행하며 최종목적은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 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데 있다.”(노동당 제4차 대표자회에서 개정된「조선노동당 규약」, 2012.04.11.) 


2021년 1월 5일부터 12일 사이 개최된 노    동당 제8차 대회에서 개정된 당 규약에서 당의 당면목적과 최종목적은 다음과 같이 새롭게 설정되었다.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실현하는데 있으며 최종목적은 인민의 리상이 완전히 실현된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데 있다.”(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개정된「조선노동당 규약」, 2021.01.09.)


보는 바와 같이, 이전 북한 지역의 당면목적이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에서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사회 건설’로 바뀌었다. 이는 주로 정치ㆍ군사 강국을 제창한 ‘사회주의 강성국가’에 경제적 번영과 문화적 개화를 더한 전면적으로 발전된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사회 건설’을 김정은 시대의 국가 목표로 정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남한 지역에 대한 노동당의 당면목적이 ‘민족해방 민주주의혁명 과업 수행’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 발전 실현’으로 바뀌었다. 이를 두고 그동안 사회 일각에서 북한의 ‘대남혁명 포기’ㆍ‘법적 두 개 한국 선언’이라는 주장과 이전 것과 ‘의미 불변’이라는 주장이 맞섰다.

우선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 발전 실현’이 ‘민족해방 민주주의혁명 과업 완수를 풀어쓴 의미 불변’이라는 주장은 둘 사이 세밀한 의미 차이를 간과한 지나친 단순화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민족해방’은 주한미군 철수를 통해 남한을 이른바 ‘미국 식민지’에서 해방시키는 독립투쟁이다. 이것은 국가 대 국가 문제로 ‘사회의 자주적 발전’을 넘어서는 주권 개념이다.

오히려 ‘사회의 자주적 발전’은 ‘민주주의혁명’의 한 결과로 나타난다. 북한은 식민지배에 의한 민족적 압박뿐 아니라 민족 안에서 계급 지배에 의한 계급적 억압에 의해서도 인간의 자주권이 유린 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민주주의혁명을 통해 유산계급을 청산하게 되면 민중은 계급적 지배에서 해방되어 자주성이 옹호되고 사회의 자주적 발전이 보장된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의 민주주의적 발전’ 역시 민주주의혁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혁명 과정에 토지개혁과 산업국유화, 남녀평등권 등 제반 민주개혁이 추진됨으로써 사회가 민주적으로 발전되어 간다는 것이다. 결국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 발전 실현’은 ‘민족해방 민주주의혁명 과업 완수’와 의미상 일치하지 않으며 ‘민족해방’ 과업이 삭제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노동당 규약에서 ‘민족해방 과업’이 삭제되었다고 해서 ‘북한 대남혁명 포기’나 ‘북한의 법적 두 개 한국 선언’이라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모순된다. 먼저 노동당 최종목적인 한반도 ‘공산주의사회 건설’은 남한 공산화, 즉 대남혁명 완성을 전제로 하는데 대남혁명을 포기하고 어떻게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단 말인가. 특히 북한은 노동당 제8차 대회 개정 규약 서문에서 (핵 무력을 염두에 둔) 강력한 국방력에 의한 대남무력적화통일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따라서 노동당 제8차 대회 개정 규약의 당의 당면목적에서 ‘민족해방’이 삭제된 것은 북한 대남인식의 중대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당 규약에서 ‘민족해방’ 삭제 배경


북한은 2021년 1월 노동당 제8차 대회가 “혁명 발전의 새로운 고조기, 장엄한 격변기에 열렸다”고 평가하였다. 과연 무엇 때문에 당시가 ‘혁명 발전의 새로운 고조기’가 되고, ‘장엄한 격변기’로 평가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2016년 노동당 제7차 대회 이후 2017년 12월 유엔의 강력한 제재로 노동당 제8차 대회가 열리기 전인 2020년 말까지 북한 경제성장률은 급격히 감소하였다. 특히 2020년 초 시작된 코로나 사태로 국경이 철저히 봉쇄됨으로써 주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이 기간 큰 변화라고 한다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에 불어온 ‘평화의 봄’이라고 할 수 있다. 그해 2월 북한은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에 선수단은 물론 고위대표단과 응원단, 기자단까지 파견하였다. 3월 김정은은 집권 6년 만에 처음 중국의 초대를 받아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였고,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도 이뤄졌다. 6월에는 역사적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렸고, 9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도 이뤄졌다.

안타깝게도 2018년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었던 ‘평화의 봄’은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2018년 한반도 ‘평화의 봄’이 김정은에게 미국 대통령과의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에 이어 중국 시진핑 주석과의 첫 정상회담을 안겨준 ‘따스한 봄’이었던 것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잠깐 스쳐 지나간 봄바람이긴 하지만 그 근원은 2017년 11월 29일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성공 이후 김정은이 내린 ‘국가 핵무력 대업 완성 선언’에 있다고 본다. 북한의 ‘핵무력 대업 완성’의 실체가 확인되진 않았으나 적어도 ‘선언’은 김정은 핵 카드의 종착점이 어디인가를 분명하게 확인해주었다. 한반도와 일본은 물론 저 멀리 미국까지 김정은의 핵 위협권에 놓이게 된다는 공식 선언인 것이다. 바로 2018년 평화의 봄은 엄중한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각국의 노력으로 찾아왔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이 노동당 8차 대회 개최 배경으로 언급한 ‘혁명 발전의 새로운 고조기’라는 것은 ‘국가 핵무력 대업 완성’으로 인한 이른바 ‘북한 대외적 지위 변화’로 볼 수 있다. 그에 상응하게 ‘혁명 발전의 장엄한 격변기’라는 것은 2019년 2월 하노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난국 타개의 돌파구를 스스로, 새로이 열어가야 하는 전환기적 시대 상황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노동당 규약의 ‘민족해방’ 삭제 의미


그렇다면 북한은 2021년 노동당 8차 대회의 개정 규약에서 왜 ‘민족해방’ 과업을 삭제했을까. 그 해답은 김정은의 핵 환상에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국가 핵무력 완성으로 민족해방 과업이 이미 완수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인식의 변화다.

제2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영변 완전 포기를 대가로 한 ‘북핵 해결’이라는 절충에 실패한 김정은은 향후 북핵 문제는 오로지 미국과의 군축협상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을 완강히 고수할 것이다. 미국은 지금의 북핵 위협 상황을 감내하든지, 핵군축 협상에서 북한 요구대로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대북 위협을 해소하든지 선택을 요구받을 것이다. 군축협상에서 진전이 없다면 지금의 상황으로도 과거처럼 미국의 일방적 군사 위협에 노출되지는 않는다고 자신하는 것이다.

지속적인 유엔제재로 인한 만성적인 경제난은 새로운 북ㆍ중ㆍ러 협력관계나 이란ㆍ동남아 등 친북 우호 국가들과의 협력으로 해결하려 할 것이다. 북한 당국의 기본적인 인식은 경제부흥을 통한 주민 생활의 완전한 윤택이 아니라 생존 유지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경제부흥이 자유를 요구하는 민주화로 이행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 당국의 요구에 상응하는 중러의 대북 경제지원이나 기타 나라들의 경제협력은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중러의 반발로 미국 주도의 대북경제제재에 파열구가 형성될 조짐이 보이는 작금의 상황에서 북한은 날이 갈수록 유엔제재를 더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북한은 대미 핵 위협 능력을 높이면 높일수록 한국 방어를 위한 미국의 핵확장 억제력을 얼마든지 약화시킬 수 있다고 본 듯하다. 따라서 전술핵 장착 단거리미사일과 잠수함발사 전술핵미사일, 600미리 대구경 방사포 위협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한국 사회 동요가 불가피해진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강력한 군사력으로 한반도 상황을 주도해 ‘사회의 민주주의적 발전’ 미명 하의 공산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북한의 자신감은 바로 ‘민족해방 과업 이미 실현’을 내포한 ‘국가 핵무력 대업 완성 선언’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핵무력 대업 완성 선언’에 의한 북한 ‘원 코리아 완성’의 자신감은 아직 인식적 오만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이 여러 차례 실험으로 어느 정도 ‘성공’이 인정되는 실질적인 핵미사일 위협에 기반하고 있는 사실까지 외면할 수는 없다. 북한의 인식적 오만을 선동적 허구로 치부하면서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향후 초래될 파국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될 것이다.

 

           

     

● Issue Brief는 집필자의 견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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