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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호] 조진수 전문연구원 - 장마당세대의 학교 조직생활: 북한의 집단주의 및 개인주의 문화 변동


제168호


조진수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장마당세대의 학교 조직생활: 북한의 집단주의 및 개인주의 문화 변동1)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2024년 1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신년인사회 강연에서 “북한에서 집단주의를 기피하고 개인주의 성향이 증가하고 있으며, 휴대전화 등 정보기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언급했다(동아일보, 2024/01/24). 그렇다면 북한에서, 특히 장마당세대 사이에서 약화되고 있는 집단주의와 태동하는 개인주의의 본질은 무엇인가? 북한의 개인주의는 ‘스스로 생각하라’는 계몽주의 전통에서 출현한 ‘근대적 주체’의 개인주의인가?2)

소비에트 제도를 바탕으로 수립된 북한정권은 강력한 집단주의를 추구해왔다. 북한에서 정의하는 집단주의는(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1970) 사회와 집단의 이익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공산주의 사상과 도덕의 기본 원칙이다. 집단주의는 생산수단이 사회적 소유가 되고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이 일치하는 사회주의 제도에 기초한 것으로 집단주의 전통은 김일성 항일 무장투쟁시기에 이루어졌으며 집단주의 최고 표현은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이라고 말한다. 북한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의 우월성은 개인주의에 대한 집단주의의 우월성이며 사회주의 승패는 집단주의를 어떻게 구현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한다.

북한은 정권수립 이후부터 공산주의 인간형을 양성할 수 있는 사회주의 교육 제도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집단주의 교양을 강화시켜 왔다. 이를 위해 학생정치조직인 소년단과 청년동맹을 만들고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켜 집단주의 정신을 키우도록 했다. 이를 통해 개인의 힘보다 집단의 힘이 세고 개인의 이익과 성과보다 집단의 이익과 성과가 더 크고 귀중하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했다. 또한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인민과 당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도록 가르치고 개인주의, 이기주의에 반대해 투쟁하도록 가르쳤다.

소년단 가입대상은 8세-13세 학생들이고 청년동맹은 14세-30세 청년들이다. 북한 학생들은 6교시 정규수업이 끝난 후에도 저녁까지 과외교양이라는 이름으로 소년단・청년동맹 조직생활을 해야 한다. 과외교양은 사회주의 교육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학생들에게 조직성과 규율성을 가르친다. 소년단・청년동맹의 가장 중요한 활동에는 정치사상 학습(당·수령에 대한 교양, 주체사상 교 양, 당 정책 교양, 공산주의 교양, 계급 교양, 집단주의 교양), 다양한 회의(단 총회·위원회, 분 단 총회·위원회 등)와 생활총화가 있다. 또한 교내활동에는 학교 환경미화, 토끼 기르기 등이 있으며 교외 활동에는 노력동원(농촌일손 돕기, 생산공장·건설현장 작업), 꼬마과제(파지·파철 수 집, 토끼가죽, 약초캐기, 외화벌이운동), 정치사회 활동(당정책 선전활동, 소년선전대)이 있다. 지·덕·체 사업에는 학습·예술·체육의 다양한 소조(동아리) 활동이 있다.

그런데 1990년대 말 고난의 행군으로 인해 배급제로 대표되는 계획경제가 붕괴하면서 학교와 사회의 일상이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 학교제도의 틀은 여전한 집단주의 문화의 뼈대로 유지되고 있으나 그 속에서 집단주의 문화가 약화되고 개인주의 문화가 태동하고 있다. 무엇보다 학생들을 촘촘한 조직과 규율로 묶어놓고 집단주의 교양을 강화시키던 소년단・청년동맹 조직 그물망이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집단주의 문화를 약화시키는 또 다른 요인은 원시 자본주의 경제체제인 장마 당의 등장이다. 고난의 행군 이후 배급제 붕괴로 인해 공교육 운영과 교사 월급은 주로 학부모 경 제력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것은 학부모 소득격차에 따른 학생들 간의 불평등을 야기한다. 북한이 탈주민들에 따르면, 학생들은 뇌물을 주면 학교의 노력동원에서 제외될 수 있으며 통제와 제재로 부터 꽤 자유롭다고 말한다.

소년단과 청년동맹의 다양한 과외활동은 많이 줄었으며 북한정권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노력동원, 꼬마과제, 생활총화 위주로 진행된다. 이 활동이 없는 날에도 학생들은 조직생활이라는 명목 하에 저녁까지 자율학습을 해야 한다. 북한 학생들의 미래와 직업은 당에 의해 결정되므로, 한 반에서 출신성분도 좋고 경제력도 있고 공부도 잘해서 대학교에 갈 수 있는 5명 내외(한 반 30-40명)를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학교에 다닌다. 따라서 자율학습 시간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옆 친구와 (때로 종이에) 수다 떨고 놀면서 시간을 보내며 교사들도 이를 묵인한다.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 이전 혹은 직후, ‘너로 인해 우리 집단의 명예가 빛난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이 말은, 경쟁 상황에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경계하는 동시에 집단 구성원들을 서로 단합시키기 위해 생겨난 말이다. 그러나 20대 초·중반 북한이탈청년들은 이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하며, 학교생활에서 집단의 이익이나 집단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내가 잘하면 끝이고 성과는 보통 개인에게 돌린다.

북한에서 장마당이 성장하면서, 북한 학생들의 방과 후 일상생활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20대 북한이탈청년들에 따르면, 장마당은 한국의 편의점과 같은 일상의 장소이며 유행을 이끌고 다양한 정보교류가 이뤄지는 곳이라고 말한다. 호프스테더(Hofstede, 1997)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개인주의를 육성하며 다양한 사회주의적 경제 질서는 집단주의를 육성한다고 했다. 장마당의 암시장에서 유입된 외부 문물의 영향은 학생들의 개성과 개인주의적 성향을 확산시키고 있다.3)

그렇다면 북한에서 태동하는 개인주의의 본질은 무엇인가? 개인주의는 단일한 사상이나 이론으로 정립된 것이 아니며 다양한 정치사회적 진화와 함께 발전해서 혼종적이며 복합적이다. 개인주의의 사상적 뿌리는 유대-기독교에서 기원한다고 본다(Dülmen, 2005; Laurent, 2001; Siedentop, 2016). 유대-기독교는 각 개인의 구원을 다루는데,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하는 기독교의 신(神)은 노예나 피압박계층, 지배자나 귀족 모두 동등한 존재라고 말하며 다가온다. 즉, 인간을 고대 사회의 가족이나 부족에 대한 연대나 종속 상태에서 해방시키면서 자유롭고 유일한 인격체로 내면화시킨다. 1000년 이상의 중세 시대 동안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에 의해 개인에 대한 새로운 존재론이 서서히 준비되어 가는 한편 개인화된 주체가 법의 근본적인 범주(교회법, 후에 세속법)로 자리잡아간다(Laurent, 2001). 16세기 종교개혁으로 성경이 라틴어에서 독일어 등으로 번역되었는데 때마침 발명된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보급과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기독교의 영혼 평등사상은 인간 자유의 보편성으로 연결되어 자연법의 기초를 닦았으며 프로테스탄티즘에서 개인의 평등과 자유, 양심에 따른 선택과 책임이라는 도덕적 의무는 개인주의 이상의 기본 틀이4) 되었다.

북한에서 태동하는 개인주의는,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와 평등을 강조하는 유대-기독교 문화에서 발명된 ‘개인’을 토대로, ‘스스로 생각하라’는 계몽주의적 전통 속에 부활한 ‘근대적 주 체’의 개인주의가 아니다. 역사 속 개인주의는 오랜 산고(産苦)와 많은 사람의 희생을 통해 출현했으며 끊임없는 자기절제와 비판적 성찰과 훈련을 통해 성숙해질 수 있다. 비판적, 저항적 성찰을 통해 탄생한 ‘개인주의’는 영국에서 자유시장 경제와 함께 발달했다. 개인은 사적 이익을 추구하며 이를 기반으로 한 계약으로 이루어진 정치공동체는 개인들의 안전과 사회 질서를 보장한다. 북한의 장마당이라는 시장경제는 이론적으로 공산주의 국가에서 존재하는 모순적이며 불법이 성행하는 형태이므로 제대로 된 계약관계를 만들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따라서 공정하고 정당한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반칙과 뇌물이 성행하는 원시적 형태의 자본주의이다.

북한에서 집단주의라는 그물망이 느슨해졌고 그 사이로 개인주의 문화가 태동하고 있지만, 자유주의적 개인주의 사상 본연에 바탕을 두고 있는 자기절제나 자유에 따른 책임을 배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탈북한 북한이탈주민들은 한국이 북한에 비해 법과 규율 체계가 잘 잡혀 있어서 한국의 일상생활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고 한다. 개인주의 핵심 가치로서의 자유는(Renaut, 2002) 규제 없는 무법(無法)의 자유가 아니라, 타율적 행동과 대립하는 개념 으로서 칸트가 제안한 자율성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한계를 해결한 칸트의 ‘도덕적 개인’은 쉽게 달성될 수 없다. 개인 스스로 정신의 자유에서 도덕적 한계를 정해서 자유를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익혀야 하는데 이것은 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노력과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 속에서 이뤄질 수 있다.



1) 이 글은 필자의 북챕터 일부를 요약했습니다. 조진수, “장마당세대의 학교 조직생활: 북한의 집단주의 및 개인주의 문화 변동과 남북주민통합 과제,” 한기호 외 (편), 『다음 세대를 위한 남북주민통합』 (파주: 한국학술정보, 2024), 46-81.

2) 서구에서 출현한 개인주의 개념은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 개념이 가진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Lukes, 1973). 북한에서 태동하는 개인주의의 본질을 살펴보기 위해서, 파생된 개인주의가 아니라 근본 뿌리인 영미권의 개인주의(고전적 자 유주의)로 거슬러 올라가 분석하고자 한다.

3) 김정은 정권은 장마당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외래 문화 확산을 막기 위해 반동사상문화배격법 (2020), 청년교양보장법(2021년), 평양문화어보호법(2023년)의 3대 사회통제법을 차례로 제정했다.



<참고문헌>

동아일보. 2024/1/24. “북한, 개인주의 성향 증가... 휴대전화 등 확산.” from 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240124/123214737/1

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1970. 『철학사전』. 평양: 사회과학출판사.Dülmen, R. van 저. 최윤영 역. 2005. 『개인의 발견: 어떻게 개인을 찾아가는가 1500-180 0』. 서울: 현실문화연구.

Hofstede, G. 1997. Cultures and organizations: software of the mind. McGraw-Hill.

Laurent, A. 저. 김용민 역. 2001. 『개인주의의 역사』. 서울: 한길사.

Lukes, S. 1973. Individualism. Basil Blackwell.

Renaut, A. 저. 장정아 역. 2002. 『개인: 주체철학에 관한 고찰』. 서울: 동문선.

Siedentop, L. 저. 정명진 역. 2016. 『개인의 탄생: 양심과 자유, 책임은 어떻게 발명되었는가?』. 서울: 부글북스.



● Issue Brief는 집필자의 견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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