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6호] 손연우 전문 연구원 - 북한의 복지제도는 왜 정치적인가: 「사회보험 및 사회보장법」을 중심으로
제186호
손 연 우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북한의 복지제도는 왜 정치적인가
: 「사회보험 및 사회보장법」을 중심으로
1. 북한 복지제도의 정치적 성격과 분석의 필요성
자본주의 국가의 복지제도가 주로 시장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위험을 완화하고 소득을 재분배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면, 국가사회주의 체제의 복지는 국가가 생산·노동·분배를 조직하는 사회경제체제의 일부로서 기능한다. 따라서 사회주의 국가의 복지제도는 주민의 생활 보장뿐 아니라 노동력 관리, 자원 배분, 주민 통제, 체제 정당성 등과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북한의 사회보험·사회보장 법제는 1946년 「사회보험법」에서 출발했다. 이후 「사회주의로동법」과 「사회보장법」 등을 거치며 사회보험과 사회보장이 별도의 제도로 발전했고, 2021년 3월 3일 제정된 「사회보험 및 사회보장법」을 통해 하나의 법률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법률에 명시된 제도가 현실에서도 그대로 작동한다고 볼 수는 없다. 북한에서는 경제난과 재원 부족 등으로 법률상 보장된 연금과 보조금 등 각종 급여와 보호가 충분히 제공되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되어 왔다. 국가의 물자 공급과 공공서비스에서도 평양과 지방 사이의 격차가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이러한 점에서 「사회보험 및 사회보장법」은 북한 주민이 실제로 누리는 복지 수준을 보여주는 자료라기보다 국가가 복지제도를 어떤 원리에 따라 설계하고, 국가와 주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북한의 사회보험·사회보장제도가 국가책임을 체제 정당성과 연결하는 방식, 노동능력 판정과 노동 배치를 통해 노동력을 관리하는 방식, 그리고 사회적 필요와 함께 국가가 인정한 공로와 지위를 복지 배분의 기준으로 삼는 방식에 주목한다.
2. 동일한 용어, 상이한 개념: 남북한의 사회보험과 사회보장
남북한은 모두 사회보험과 사회보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그 개념과 제도적 범위에는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 사회보장은 사회보험·공공부조·사회서비스 등을 포괄하는 상위개념이다. 사회보험에는 국민연금·국민건강보험·고용보험·산업재해보상보험 등이 포함된다.
반면 북한의 「사회보험 및 사회보장법」은 사회보험과 사회보장을 서로 구분되는 별개의 제도로 규정한다. 사회보험은 질병·부상·임신·출산 등으로 일시적으로 노동능력을 상실한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반면, 사회보장은 고령이나 질병·부상 등으로 노동능력을 장기간 상실한 사람과 돌볼 사람이 없는 노인·아동·장애인 등 지속적인 보호가 필요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3. 「사회보험 및 사회보장법」에서 보이는 세 가지 정치적 특성
1) 국가책임과 체제 정당성: 복지는 어떻게 체제를 정당화하는가
북한의 사회보험·사회보장제도는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주민을 보호하는 동시에 국가가 인민의 생활을 책임진다는 원칙을 통해 사회주의 체제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사회보험 및 사회보장법」 제1조와 제3조는 주민의 생활과 건강을 보호하는 것을 제도의 목적으로 제시하면서,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과 ‘사회주의국가의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성격’을 구현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사회보험과 사회보장을 주민 보호를 위한 정책에 그치지 않고 사회주의 체제의 정당성과 연결되는 제도로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국가가 인민의 생활을 책임진다는 원칙이 모든 복지 비용을 국가가 직접 부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제4조, 그리고 제8조부터 제14조까지는 사회보험·사회보장에 필요한 재원을 국가 예산뿐 아니라 기관·기업소·단체의 자금과 근로자의 부담을 통해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동자·사무원과 농장원 역시 노동보수나 결산 분배의 일부를 사회보험료로 납부한다. 국가가 제도 운영의 책임을 맡으면서도 실제 재원은 여러 주체가 분담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러한 비용 분담 구조 자체가 북한만의 특징은 아니다. 사회보험 중심의 복지국가에서는 일반적으로 국가와 사용자, 근로자가 재원 조달에 참여한다. 그럼에도 북한의 경우 주목할 점은 이러한 분담 구조를 국가가 인민의 생활을 책임진다는 사회주의적 국가책임의 원칙과 연결한다는 데 있다. 즉, 북한의 사회보험·사회보장제도는 여러 주체의 재정적 참여를 바탕으로 운영되도록 설계되어 있으면서도, 이를 사회주의 국가의 책임과 체제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근거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2) 보호와 노동력 관리: 복지제도는 노동력 관리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북한의 사회보장제도는 노동능력을 상실한 주민에게 급여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능력을 판정하고 관리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제38조와 제62조 등에 따르면, 북한은 주민의 노동능력에 대한 판정 결과를 바탕으로 노동, 경로동, 사회보장 대상을 구분하고 그에 따라 노동과 보호의 방식을 결정한다.
질병이나 부상으로 치료를 받은 후에도 노동능력을 회복하지 못한 근로자는 노동능력에 대한 의학적 감정을 받아야 한다. 일부 노동이 가능한 경우에는 경로동 대상으로 편입되어 정상 노동시간보다 짧게 일하면서 치료를 병행하고, 노동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경우에는 사회보장 대상으로 전환된다.
경로동 직장은 이러한 제도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단순히 노동능력이 저하된 주민을 보호하는 시설이 아니라 생산·봉사 계획에 따라 운영되는 작업 조직이다. 경로동 대상자는 정기적으로 노동능력을 재판정받으며, 노동능력이 회복되면 적합한 직종에 재배치되고 노동이 불가능해지면 사회보장 대상으로 전환된다.
제89조는 이러한 판정과 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행정적 책임을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북한의 사회보장제도는 주민을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동시에 노동능력의 상실과 회복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그 결과에 따라 노동 배치와 복귀를 관리하는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3) 필요와 공로에 따른 차등: 복지 배분의 기준은 무엇인가
북한 사회보장의 주요 자격 기준은 사회적 필요에 있다. 제37조는 고령자, 질병이나 신체장애로 노동능력을 상실한 사람, 돌볼 사람이 없는 노인과 어린이, 장애인 등을 사회보장 대상으로 규정한다. 이처럼 북한의 사회보장제도 역시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를 기본적인 기능으로 한다.
그러나 복지 혜택의 수준과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기준은 사회적 필요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제11조와 제17조 등은 영웅·영예군인·영예전상자·영예근로자 등의 지위를 별도로 판정하고 증서를 발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혁명투쟁·사회정치활동·혁명과업 수행에서 공훈을 세운 사람과 그 가족에 대한 특별우대를 사회보장의 기본원칙으로 명시하고 있다.
특히 제4장에서는 ‘공로자에 대한 특별우대’를 별도로 다루며, 혁명투쟁공로자·영웅·전쟁로병·영예근로자와 그 가족에게 제공되는 혜택을 구체적으로 규정한다. 여기에는 정양·휴양·보양의 우선권, 추가 보조금과 우대금, 보조기구의 우선 공급뿐 아니라 의약품·주택·식량·교통 등 생활 전반에 걸친 우대가 포함된다. 급여 수준에서도 일반 근로자와 국가가 공로를 인정한 사람 사이에 차등을 두고 있다.
이처럼 북한의 복지제도는 사회적 필요에 따른 보호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노동과 전문적 기여, 정치·혁명적 공로, 국가가 인정한 지위에 따라 급여와 혜택을 차등적으로 제공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는 북한의 복지배분이 사회적 보호의 원칙과 국가가 인정하는 공로에 대한 보상을 함께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4. 북한 복지제도의 정치적 성격과 연구 과제
북한의 복지는 주민을 보호하는 제도인 동시에 국가가 주민의 생활과 노동을 조직하는 정치적 제도이기도 하다. 북한의 사회보험·사회보장제도에는 국가책임을 통한 체제 정당화, 노동능력 판정에 기초한 노동력 관리, 공로와 지위에 따른 차등적 배분이라는 정치적 원리가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북한의 복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급여 수준이나 제도의 형식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치적 원리와 국가와 주민의 관계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다만 법률은 국가가 공식적으로 설계한 제도와 정책 방향을 보여줄 뿐, 실제 운영 실태까지 설명하지는 못한다. 법률에 명시된 급여와 보호가 현실에서 어느 정도 제공되는지, 국가·기업·가계가 실제로 비용을 어떻게 분담하는지, 공로와 지위에 따른 차등이 현실에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는 별도의 자료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은 남북한의 복지제도를 비교하고 향후 통합을 논의하는 데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남북한이 사회보험과 사회보장이라는 같은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제도의 기본 원리와 국가와 주민의 관계가 다르다면, 외형적인 유사성만으로 제도의 통합 가능성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북한의 복지제도를 정치적 맥락에서 이해하는 동시에 실제 운영 실태와 주민의 경험을 살펴보는 연구가 필요하다. 법률이 보여주는 제도적 원리와 현실에서 작동하는 복지의 모습을 함께 살펴볼 때, 북한 복지제도의 성격을 이해하고 남북한 복지의 차이와 접점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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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곤. 2006.“북한 사회복지제도와 사회경제적 계층구조 변화.”「국방연구」49(1): 83-112.
#키워드: 북한 복지제도, 사회보험, 사회보장법, 노동력 관리, 복지 배분의 차등성, North Korean Welfare System, Social Insurance, Social Security Act, Labor Force Management, Differentiated Welfare Allo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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